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에 대한 정권 차원의 사퇴 압박설이 공공연하게 흘러 다니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이명박(MB) 정부 때 임명되고 연임했다. 남은 임기는 1년 반쯤.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몇 차례 모임에 두 사람은 계속 초청받지 못했다. 이달 초 시작한 포스코 세무조사도 ‘정준양 흔들기’로 보는 사람이 많다.
정권 교체기마다 일어나던 일이다. 먼저 회사를 공격하고, 다음은 개인 비리를 들추고, 그래도 안 되면 친인척을 뒤진다. 이때 허수아비 이사들은 아무 것도 모른 척 투명인간 행세를 한다. 현재 두 회사 안팎에서 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사람만도 10명씩은 더 된다.
두 회사는 공기업에서 완전 민영화해 현재 정부 지분은 제로(0)다. 이들 회사에 죄가 있다면 두 가지다. 지금도 주인이 없는 죄, 예전부터 정권이 점지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자리를 주고받은 죄다. 지금 CEO들도 전임자가 내쫓기듯 비운 자리에 앉았다. “이젠 의자를 비워줄 때”라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거다.
하지만 기업이 고질적 ‘CEO 리스크’에 시달리는 것은 정말 문제다. 5년 주기로 검찰수사니 세무조사니 하는 것도 국제 망신이다. 이들을 민영화한 것은 경영 자율성을 보장할 테니 공기업 아니면 재벌 형태뿐인 기존의 척박한 대기업 지배구조와는 다른 모델을 한번 만들어보라는 취지 아니었나.
현 CEO들을 두둔할 마음은 없다. 문제가 크다면 임기 중에도 교체해야 한다. 주주와 이사회가 주축이 돼야 하며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앞장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도 외부 입김 탓이 아니라 ‘국민노후를 위한 연금 수익성 제고’ 차원에서 국민연금관리공단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적 실무적 판단에 따라,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 외에 숱한 기업의 대주주다. 국민연금을 도구 삼아 민간기업 경영권에 함부로 개입하면 안 된다.
이 난은 공적(公的) 담론을 다루는 자리다. 특정 기업 CEO의 역량이나 인사 적절성을 주제로 삼는 일은 드물다. 귀한 지면에서 이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국사(國事)가 정도(正道)를 벗어났다는 강한 의심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대기업 지배구조를 정상화하겠다”는 현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기업이 이상하면 기업과 그 주변에 손해를 끼친다. 그러나 권력이 이상하면 사회 전체가 손해 본다. 자정(自淨)비용도 엄청나다. 가정하여 이 글의 제목대로 KT 등의 CEO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래서 정부가 반칙을 동원해 이들을 교체할 경우 기업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고 치자. 대한민국 정부가 근거 없는 권력을 휘두르고 정의를 잃는 것과 이들 회사의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것, 어느 쪽이 더 큰 손실인가. 어느 쪽이 더 엄중한 문제인가.
‘열린 사회’의 제1 원칙은 권력의 형성 및 그 행사의 정당성이다. 민주주의 역시 그러하다. 정상 절차가 지지부진하고 비효율적인 듯하지만 그래도 감내하는 것은 그게 원래 옳을 뿐 아니라, 결국은 편법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무수히 경험한 까닭이다.
두 회사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통신과 철강산업에서 대안 부재(不在)의 기업이고, CEO 교체를 통한 경영정상화가 ‘너무나 긴급한’ 상황이며, 정부의 반칙 개입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한다면…. 정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아예 공론화해 국민과 주주, 이사들을 설득하라. 그리고 해당 기업의 재(再)국유화를 심각히 고민하라. 박 대통령은 광복절 축사에서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 더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말로 그렇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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