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내가 바라보는 흰 구름은 눈부셨는데 풀잎에 부서지는 바람은 속살이 파랗게 떨리기도 했는데
사람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주저앉아 생각는다 달 떠 올 때까지.
청명한 보름달 아래 유유자적 배를 타는 한 사람. 얼굴이 동글동글해 ‘동구리’라 불린다. 늘 밝게 웃는 표정인데 속내는 다르다. ‘동구리 작가’ 권기수 씨는 홀로 등장한 동구리에 대해 마음 붙일 곳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의 외로움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와 닮은꼴이다.
명절은 가족 화목을 다지는 즐거운 축제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가족 불화가 주로 폭발하는 시간이란 것도 새삼스러운 사실은 아니다. 명절 연휴를 앞둔 마음은 반갑고 흐뭇한데 보내고 나면 허전하고 시원섭섭함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도 백발성성한 부모님, 같이 귀밑머리 희어져 가는 형제자매를 보면 꽁했던 마음과 사소한 갈등이 어느덧 한 뼘씩 사그라지기도 한다.
해마다 그랬듯이 집 안 가득 북적이는 가족 친척과 함께 추석 당일을 이집 저집 오가며 분주하게 보냈다. 다음 날은 모처럼 연로하신 친정엄마를 독차지해 단둘이 오붓한 하루를 지냈다. 거동이 불편하신 탓에 바깥나들이는 엄두도 못 내고 저녁 무렵에 아파트 사이로 빠끔히 얼굴 내민 노란 달을 마중한 게 가장 큰 행사였다. 달 보고 무슨 소원 빌었느냐는 딸의 호기심에 “비밀”이라 답하는 엄마의 속내를 어찌 모를까. 팔순을 훌쩍 넘은 노모의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등을 쓰다듬다 나태주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남의 집 추녀 밑에 주저앉아서 할머니도 어머니도 계셨던 ‘그때’를 회상하는 한 남자의 모습에 가슴이 절로 짠해진다. 우리 역시 ‘젊고 이쁜’ 엄마와 함께했던 그 많은 명절을 고마운 줄 모르고 보냈으니, 등 굽은 노모와 맞이하는 추석이 한 해 한 해 더 눈물겹고 애틋하지 않던가.
방송에서 연예인만 멀미 날 지경으로 보다가 자식이 부모님 밥상을 차리는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마흔 살 노총각 아들이 가마솥에 끓인 백숙, 이 하나 없는 시어머니를 위해 며느리가 만든 깨죽, 아들과 남편 잃고 서로 의지해 살아가는 고부가 나누는 감자버무리 등. 일상의 밥상에 담긴 속 깊은 정은 일 년에 한두 번 고향집에서 차려 드린 기름진 명절음식이나 어쩌다 생색내며 모시고 가는 외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행사가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도 긴 추석 연휴를 보내느라 몸도 마음도 꽤나 시끌벅적했다. 몇 날 며칠 시내를 뱅뱅 돌며 보낸 이도, 가다서다를 반복한 끝에 만난 서울 톨게이트의 불빛에 안도의 숨을 내쉰 이도 이제 아쉽고 섭섭한 마음으로 연휴 마지막 날을 배웅할 때다. 오늘 밤, 새 달 뜰 때를 기다리며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 한 자락 기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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