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에 보편적 복지 논쟁이 뜨겁게 일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은 복지는 필연적으로 세금 논쟁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복지는 세금으로 한다. 하지만 누구나 혜택은 많이 받고 싶고, 세금은 적게 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세금 납부액에 비례해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복지 혜택을 많이 받는 사람이 세금을 적게 내기도 하고, 세금을 많이 내지만 복지 혜택은 별로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렵다.
우리는 흔히 부자나 대기업은 세금을 적게 내고, 근로자들은 유리지갑이라 세금을 많이 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우리의 경우 현재 소득상위 20%가 내는 세금이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국민부담률, 즉 국민이 내는 세금과 건강보험 등의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금액은 국민총생산 대비 34%이지만 우리는 25%에 그치고 있다.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국가는 50% 가까이에 이른다.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기업이나 근로자의 세금 부담이 크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2011년의 경우 근로소득자 중 36%가 과세 미달자였다. 또 자영업자의 21%가 소득세 산출세액이 없다. 그리고 부가가치세 사업자 중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는 간이사업자가 32%나 된다. 이는 소득이 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 중 3분의 1 이상이 세금을 별로 납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원인은 불황 또는 저임금에서 기인한 면도 있지만 정치권에서 표를 얻기 위해 소득공제나 감면제도 도입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세제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와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배분하여 과세하는 인두세를 도입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중간계층 이상의 소득이 있는 사람은 국민개세주의 원칙에 따라 적든 많든 적정한 세금을 부담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 재정건전성이 유지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민개세주의는 절대왕권시절 왕과 귀족의 면세 혜택을 박탈하기 위해 고안된 논리였다.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제13조는 아예 ‘조세는 모든 시민에게 부과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제14조는 한발 더 나아가 납세의무가 아니라 납세권리가 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되 복지 혜택을 확실하게 받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올해 만든 제1차 세법개정안은 비과세 감면 축소 또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재원 조달에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국민개세주의 원칙에는 충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민과 정치권의 조세저항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하루 만에 변경해버렸다. ‘새가슴 조세정책’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135조 원의 복지재원을 마련한단 말인가.
더 심각한 것은 정부의 편협한 시각이다. 8월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뒤 연봉 3450만∼5500만 원 정도의 중산층을 연간 16만 원 정도의 추가적인 세금 납부도 내키지 않아 하는 속 좁은 납세자로 폄하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들도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라면 추가로 세금을 납부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단지 고소득층의 세금부담 증가율이 별로 높지 않았음을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비과세나 감면 규정을 계속 축소 및 폐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인이나 개인사업자가 각종 조세감면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세금을 내게 하는 ‘최저한세제도’를 보다 활성화하여 비과세나 감면을 받았더라도 일정 금액은 세금으로 납부하게 해야 한다.
아울러 부가가치세가 면세되는 대상을 EU 수준으로 대폭 축소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경우 의료 학원 금융업 등은 부가가치세가 면세지만 유럽은 전부 과세를 하고 있다.
복지는 결국 세금으로 할 수밖에 없다. 빚을 내서 하는 것은 국가채무를 증가시켜 나라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 국민 대부분은 세금을 떳떳하게 능력껏 내고, 복지 혜택을 정당하게 받겠다고 하는데 정작 정부는 ‘증세 불가 약속’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 같다.
가장 합리적인 복지조세 국가 모델은 구성원이 능력껏 일하고 얻은 모든 소득에 대해 공평하게 과세하고, 동시에 구성원이 필요한 만큼의 복지 혜택을 주는 사회다. 복지를 제대로 하려거든 세제를 올곧게 운영해야 한다. 납세의무보다는 납세권리가 생각나도록 세제의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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