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가난한 학생 잘 가르치고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5일 03시 00분


저소득층 학생 보살피는 선진국의 치밀한 배려
한국은 현실 파악, 대책도 모두 공백 상태
양극화 날로 심해지는 시대… 정부의 역할 사명 크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교육부가 발표한 ‘2013년 저소득층 교육비 지원 현황’이 눈길을 끈다. 전국 초중고교생 650만 명 가운데 약 100만 명을 상대로 이뤄지는 각종 지원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전체 지원 금액은 3조1800억 원으로 서울시교육청의 올해 순수 교육예산인 9700억 원의 3.27배에 해당한다. 저소득층 학생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름대로 상당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저소득층 학생에 대한 교육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다.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사회에 잘 적응하는 사람과 소외된 사람, 삶의 질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일찍부터 교육 환경에 의해 갈라지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려 있다.

관련 연구와 실태 조사도 활발하다. 미국 미시간대는 3세 영유아들의 어휘력을 계층별로 조사했다. 중산층 이상의 자녀들은 평균 1116개의 어휘를 알고 있었으나 노동자 계층의 자녀는 749개의 어휘, 사회복지 시설의 도움을 받는 유아는 525개의 어휘를 아는 데 그쳤다.

영국 레졸루션 재단은 고소득층 부모의 75%가 자녀에게 책을 매일 읽어주는 반면에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62%에 머물러 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2011년 5세 아동 1만5000명을 조사한 결과다. 가난한 아이들은 처음부터 읽기와 쓰기 능력에서 고소득층에 뒤지게 되고, 다른 과목에서도 학습 능력의 차이로 연결되면서 평생에 걸쳐 쓴잔을 마신다고 했다. 서구 학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실태 파악이 구체적인 만큼 대책도 다양하다. 프랑스는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곳을 ‘우선 교육 지역’으로 지정해 집중 지원하고 있다. 1981년 미테랑 정부가 도입한 정책이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교사들이 개인 수업을 시행하고 위생과 건강 문제까지 챙겨 준다.

영국은 최근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조사, 즉 한국 좌파들이 ‘일제고사’라고 부르는 시험의 실시 대상을 5세로 앞당겨야 한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조사를 통해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좀 더 일찍 찾아내 적절한 대책을 강구하자는 얘기다.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상 조식(朝食)’을 제공하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가난한 학생들은 아침 식사를 거르고 수업을 듣는 사례가 많아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저소득층의 현실을 널리 알리고 이들의 인생 출발선 격차를 어떻게 해서든 좁혀 보려는 선진국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이에 비해 우리 교육당국의 저소득층 지원 내용을 보면 3조1800억 원의 전체 금액 가운데 무상급식을 포함한 급식비에만 76%인 2조4300억 원을 들이고 있다. 나머지 7500억 원은 고교 학비와 ‘방과후 수업’ 수강비용, 인터넷 통신비를 지원하는 것에 그친다. 급식 제공을 위주로 학비 면제와 함께 인터넷 접근권을 높여주는 정도다. 현실 파악도, 대책도, 저소득층 자녀를 잘 가르쳐야 한다는 국가 차원의 문제의식도 거의 공백 상태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저소득층 교육에 대한 철학의 부재 현상마저 드러내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생을 대상으로 치러오던 ‘일제고사’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다른 나라에서는 5세 아동에게 일제고사를 치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마당에 한국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첫 일제고사를 치르게 됐다. 고소득층은 자녀가 일제고사를 언제 치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알아서 미래에 대비할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자녀 가운데 학력이 떨어지는 아이에 대해서는 국가가 최대한 일찍 개입해 도와줄 필요가 있다. 말끝마다 저소득층을 위한다는 일부 세력이 그나마 남은 중학교 3학년, 고교 2학년에 대한 일제고사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과거에는 교사들의 열정이 가난한 학생들을 독려하고 부모가 못하는 부족한 부분을 메워줬다. 교권이 추락하고 사명감도 흐려진 지금은 교사들에게 기대하기도 어려워졌다. 저소득층을 위한 교육 예산 대부분을 급식에 투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정부는 교육열이 강한 부모들을 막아서기보다는, 빈곤 계층의 교육을 철저히 챙기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입시제도는 어떻게 바꾸더라도 부유층에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빈곤 계층에 대해 치밀하고 적극적인 교육 대책을 제도화하는 것은 양극화가 갈수록 확대되는 이 시대 정부의 사명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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