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상훈]동양그룹 구조조정의 선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이상훈 경제부 기자
이상훈 경제부 기자
“돌이켜 보면 지난해 12월이 분수령이었어요. 동양그룹이 그때 현명한 선택을 했더라면….”

오리온그룹이 동양그룹 지원 요청을 거절한 소식이 알려진 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씁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이들은 자매 그룹 간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위기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동양그룹이 당국과 시장의 믿음을 잃은 결정적 계기는 9개월 전의 ‘엉뚱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2012년 12월 극심한 자금난을 겪던 동양그룹은 시멘트와 화력발전, 금융 등 3개 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내용의 경영개선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룹의 비핵심 자산을 팔아 만기가 도래하는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곧바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장모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은 보유 중인 오리온 지분 2.7%를 계열사 동양네트웍스에 무상 대여했다. 그룹은 이 주식을 팔아 현금 1645억 원을 마련했다. 기업 구조조정에서 오너 일가의 사재(私財) 출연은 최고의 성의 표시로 여겨진다.

물 흐르듯 진행될 것 같던 구조조정이 틀어진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 계열사 동양레저가 갖고 있던 경기 안성 웨스트파인 골프장을 동양네트웍스가 793억 원에 인수했다. 1년여간 매물로 내놨으나 주인을 못 찾던 그 골프장이었다. 감정가대로 값을 치렀으니 결과적으로 시세보다 비싸게 산 셈이다. 얼마 뒤 동양네트웍스는 ㈜동양으로부터 바둑 사이트 ‘타이젬’을 운영하는 동양온라인 지분 41.5%를 62억 원에 매입했다. 이 당국자는 “몇십억 원이 부족해 어음을 찍는 회사가 자금 마련 일주일 만에 골프장, 게임회사를 사면 어떡하냐”며 “일의 순서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물론 당시 그룹으로서는 그런 선택을 한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동양레저는 CP를 발행하며 그룹 자금줄 역할을 해 오다 자본잠식에 빠지며 어려움을 겪었다. ㈜동양은 그룹의 지주사 격으로 경영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회사다. 위기에 빠진 주요 계열사에 자금을 수혈하는 과정에서 훗날 돈이 될 자산을 갖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동양그룹 측은 당시 “헐값에 넘기는 것보다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때 매각하는 게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결과론적인 지적일 수도 있지만, 그때의 선택은 패착이었다.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회사를 꼭 살려야 했다면 안 팔리는 자산을 떠안을 게 아니라 헐값에라도 하루빨리 외부에 팔았어야 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부실 계열사를 우회 지원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교롭게도 이후 추진한 동양매직, 동양파워 등의 매각은 난항을 겪으며 유동성 위기를 부채질했다. 그 부담은 동양그룹 계열사 CP 및 회사채를 1조 원어치 넘게 들고 있는 투자자 5만여 명과 주주들이 고스란히 지게 됐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동양그룹#기업 구조조정#웨스트파인 골프장#타이젬#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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