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정의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관은 누가 뭐래도 국세청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들에게 ‘국세청이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느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때때로 불거지는 세무조사의 공정성 논란에, 고위 간부들의 수뢰 사건은 이 같은 불신을 더한다.
세무조사는 불공정한가? 세무조사의 강도나 과세 결과가 공정하지 못하다면 심각한 형평성의 문제가 야기된다. 세무조사의 결과가 공정하지 못한 것은 특정 납세자와 국세공무원 사이에 유착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착관계가 아니더라도 정권과 가까운 관계라고 보이는 대기업, 언론사나 대형 교회에 대하여는 현실적으로 국세청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국세공무원은 부패했는가? 그렇다. 우리 정치가들이 국민 수준만큼 무능한 것처럼 국세공무원들은 딱 우리 납세자들의 수준만큼 부패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부패의 역사는 유구하고, 국세공무원의 비리는 역사와 함께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같이 자라온 것이기에 그 수준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국세공무원의 비리가 개인적 차원에 그친다면 문제는 상대적으로 간단하다. 그러나 조직의 부패라면 심각한 것이다. 국세청의 간부 조직은 직원의 비리사건이 외부 감찰기관에 의하여 드러날 경우 언론에 노출되지 않도록 전체 조직 차원에서 노력한다. 비단 국세청 조직만이 그러는 것은 아니겠으나 분명 비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보다 감추려는 노력이 더 강하다면 비리는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국세청도 그동안 청장이 새로 부임하거나, 대형 비리사건이 터지면 직무평가 계약 제도를 도입하거나 감찰 제도를 강화하는 등 나름대로의 개혁적 시도를 항상 해 왔다. 그러나 그뿐이었고 큰 변화는 없었다. 외부 인사가 국세청장이 되기도 했고, 많은 예산을 들여 국제적인 컨설팅 업체의 진단도 받아보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인 2010년 부즈앨런의 국세행정보고서(국세청 조직 진단 및 개편안 관련 연구용역 보고서)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필자는 국세청의 변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소신 있는 세무행정을 위해 국세청장의 임기를 보장해 주면서 국세청장 인사와 국세청 중립에 대한 권한을 가진 위원회를 두는 내용의 국세청법 제정이 필요하다. 물론 위원회 위원의 절반 이상은 국회에서 여야의 합의를 통하여 선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 국세공무원들이 퇴직 후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으로 이동하여 납세자들과의 유착과 담합의 통로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것이 중요하다.
좀 더 정확하고 엄밀한 세무행정을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가 지하경제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국세청은 정부와 국회에 고액거래나 혐의거래 등 금융정보분석원(FIU) 금융정보를 요구했으나, 탈세 혐의가 있는 경우에만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법이 개정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국세청에 더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일’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보다 나은 세무행정을 위해 활용 가능한 정보를 제한하는 일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세무조사의 엄밀성에 대한 통제는 다른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취임한 김덕중 청장은 세무조사감사위원회를 두어 세무조사 결과를 사후에도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까지의 다른 국세청장들의 개혁보다는 분명 한발 더 나간 내용이다. 하지만 취지대로 실제 운영이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국세청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쉽게 할 수 있다. 바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정권이나 재벌가 같은 유력 그룹에 봉사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봉사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어떠한 방법으로 사회가 국세청을 이끌어 갈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간단치 않다. 하지만 긴 시간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의 부패가 감소돼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노력을 믿고 작은 방법이라도 계속해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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