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만 관객을 넘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 기를 쓰고 있는 ‘설국열차’는 의심의 여지없이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최악이다. 로컬 감성을 기반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스릴과 묘한 이미지의 충돌, 슬퍼서 더 웃긴 아이러니한 유머를 직조해내던 놀라운 예술가 봉준호가 자신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430억 원을 들인 이 대작에 이르러선 예술적 비전을 잃고 동네 슈퍼에서 파는 반액 할인된 아이스크림처럼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그만인 기성상품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나는 실망을 넘어 슬프고 화가 났다.
물론 400억 원이 넘는 한국영화 역대 최대 제작비의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만을 강조하는 것도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치명적 문제는 첫째,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고 둘째, 봉준호의 인장이 어디에 새겨져 있는지 알지 못할 만큼 개성이 없다는 점이며 마지막 셋째, 그 내용이 놀라울 만큼 시대착오적이란 사실이다.
일단 나는, 밖으론 나갈 수 없는 설국열차의 꼬리 칸에 하층민들이 바퀴벌레처럼 살면서 자신들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 머무는 앞 칸으론 결코 옮겨가지 못한다는 원작만화의 설정부터가 지루해 죽겠다. ‘이번 칸’ 다음에는 여지없이 ‘다음 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 관객은 ‘아침밥 먹은 다음엔 점심밥 기다리는’ 꼴처럼 영화를 그저 ‘받아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엄청난 선동을 이뤄내는 감성마술사 봉준호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영화를 둘러싸고 인터넷에서 일어났던 논란이다. “봉준호의 작품이라 엄청 기대했는데 영 지루하고 재미없었어요”라는 관람 촌평을 누군가 올리면 여지없이 “이 무식한 녀석아. 이건 계급투쟁을 은유하는 내용이야” “영 이해를 못하네…”라는 반박의 댓글이 달리는 것이다. 아니, 계급투쟁을 다루는 게 무슨 신성불가침이라도 된단 말인가. 계급투쟁을 다루는 영화는 재미없어 할 자유도 없는가. 유식을 가장해 이런 무식한 반박을 가차 없이 퍼붓는 현상이야말로 이 영화가 비판하고자 하는 우리 안의 파시즘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 영화의 설정 자체가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궁금하다. 계급은 과연 설국열차처럼 칸칸이 일도양단 될까? 그렇다면 갓난아기 때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 입양돼 놀라운 지적능력으로 ‘잭팟’을 터뜨린 정보기술(IT) 대부 스티브 잡스는 설국열차에선 몇 번째 칸에 있는 걸까?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칸쯤에서 태어나 단박에 맨 앞 칸까지 ‘계급혁명’ 없이 이동하는 데 성공한 잡스가 속해 있던 이 자본주의 사회를 이 영화는 어떻게 설명해낼까?
한 편 연출에 ‘억 소리 나는’ 대우를 받는 부자감독 봉준호는 그럼 설국열차의 몇 번째 칸에 타고 있는 걸까? 이 영화를 보고 수많은 중산층 관객의 마음속 상대적 박탈감에 불을 지피면서 엄청난 수입을 올린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는 설국열차의 몇 번째 칸에 있는 걸까? “계급투쟁을 다루는 영화이므로 재미없어 하면 바보 등신”이라고 옹호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 영화 투자배급사의 배를 불려주게 된 사람이야말로 알고 보면 설국열차 맨 마지막 칸에 살며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존재가 아닐까 말이다. 또 있다. 사회주의 혁명을 외치며 월 1000만 원이 넘는 세비를 챙기고 아들은 정작 자본주의의 총화인 미국에 유학 보내는 국회의원은 설국열차의 몇 번째 칸에 타고 있는 걸까?
아, 이쯤 되니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남긴 명언이 이 순간 떠오른다. “돈 버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430억 원짜리 설국열차야말로 자신이 비판하고자 했던 바로 그 대상은 아닐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