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 검찰총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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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검찰총장’은 모순의 자리로 불린다. 3권 분립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상징하는 자리이다. 행정조직의 수장으로서 검찰총장은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한다. 동시에 준사법기관의 수장으로서 국민에게 충성해야 한다. 대통령의 검찰총장이면서 국민의 총장이어야 한다. 정치적 압력을 피할 수 없으면서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영국의 검찰총장이었던 마이클 헤이버스는 검찰총장을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인 사람”이라 일렀다.

그래서 수난은 검찰총장의 숙명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한 검찰총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별별 순위를 다 매기는 미국인들이지만 ‘최고의 연방검찰총장(법무부 장관)’을 뽑지는 않는다. ‘최악의 검찰총장’만 추릴 뿐이다.

현재 연방검찰총장인 에릭 홀더는 역사상 최악의 총장으로 꼽힌다. 최초의 흑인 총장인 그는 정치적 편향성과 오만, 무능, 부패 등의 이유로 끊임없이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홀더는 AP통신 기자들의 통화 기록을 조사토록 하는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켜 정부뿐 아니라 국민의 골칫거리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의 앨버토 곤잘러스 역시 최악의 검찰총장으로 꼽혔다. 그는 대통령 지시에 따른 연방검사 파면 등의 논란 끝에 중도 사임했다. 그는 정치적 독립성과 판단력이 부족하며, 백악관의 막강 실세였던 칼 로브에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줏대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선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곤잘러스가 검찰총장직을 정치화했다. 그는 국민의 검사 대신에 대통령의 검사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 파면하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정치적 집행자인 홀더를 기꺼이 옹호하는 위선자”라고 욕을 먹는 역설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워터게이트 사건에 개입해 옥살이했던 존 미첼 등 ‘최악’의 반열에 오르는 검찰총장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82명의 역대 연방검찰총장 가운데 정치적 중립을 가장 잘 지킨 인물이 그리핀 벨이라는 데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은퇴한 연방판사를 총장에 지명하자 여론은 격앙했다. 상원 청문회는 사상 최악의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벨은 카터처럼 ‘남부 사람’. 더욱이 두 사람의 고향집은 15km밖에 떨어지지 않아 집안 대대로 잘 아는 사이였다. 벨은 카터의 사촌 형과 고교 동기였다. 극단의 연줄 인사였다.

닉슨과 친구였던 미첼이 엉망으로 만든 법무부의 투명성과 중립성 확립을 기대했던 국민들에게 대통령과 한동네 사람이 검찰총장이 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 게다가 벨은 흑백 분리를 고집하는 사교 클럽들의 회원이었다. 최초의 흑인 또는 여성 검찰총장을 기대했던 터라 그것도 중대한 결격 사유였다. 하지만 어렵게 총장이 된 벨은 2년 8개월 뒤 더할 나위 없는 찬사를 들으며 은퇴했다. 야당 상원의원으로 반대표를 던졌던 밥 돌은 “내가 한 투표 가운데 최악의 하나였다”며 사과했다. 워런 버거 연방대법원장은 “그보다 잘한 검찰총장은 없었다”고 상찬했다.

벨의 원칙은 분명했다. “대통령의 검찰총장이 아니다. 미국 정부와 국민들의 검찰총장이다.” 그는 원칙을 실행에 옮겼다. 어린이를 수갑 채운 채 심문하다 사살한 경찰관에게 가벼운 주 징역형이 선고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카터는 연방검찰의 기소를 지시했다. 벨은 “법으로 그렇게 안 된다”며 거부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 운동원을 연방 교도소 책임자에 앉히려고 하자 “다른 자리를 주시죠”라며 거절했다. 대통령이 계속 고집하자 그의 직업을 물었다. “회계사”라는 말에 “그럴 수 없습니다. 수많은 직원이 그 자리를 보고 일하는 전문 조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벨은 늘 ‘정치’와 ‘선거’ 타령을 하는 백악관 참모들의 요구도 무시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과 충돌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립적 검찰총장이란 평가를 받는 건 아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상원은 추모 결의안에서 “재임 중 백악관과의 회합과 통화는 물론이고 의원들과 법무부 밖의 사람들과 접촉한 모든 일정을 매일 공개함으로써 조직에 독립성과 신뢰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벨은 검찰총장의 일상에서 철저하게 투명함을 실천함으로써 “대통령이라도 옳은 일이 아니면 돕지 않겠다”던 공언을 지켰다. 미국에서 이러한 검찰총장의 일정 공개는 전무후무한 일. 벨이 유독 돋보이는 검찰총장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한국의 검찰총장들도 늘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아 왔다. 벨의 일정 공개는 정치적 독립성을 외치는 한국의 검찰총장들을 위한 절묘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면 스스로 엄격해져야 한다. 정치 논란의 중심에 선 채동욱 총장도 청와대 전화를 받았는지, 법무장관을 만나 사퇴 압력을 받았는지, 야당 의원들과 자주 어울렸는지, 어느 여인의 술집에 자주 갔는지 등 그간의 외부 접촉을 모두 공개한다면 자신에 대한 어떤 의혹도 자연스레 풀릴 것이다. 그럴 때 그가 말하는 검찰의 독립성이 이뤄질 것이다. 벨의 경우를 따를 것을 채 총장에게 권한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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