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만질 수 없는 그녀에게 ‘별풍선’ 뿌리는 남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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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투에 나는 빠졌어. 그랬어. 지난 사랑 얘기에 나도 모를 질투.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하지만 우리끼리 통하는 여긴 사이버 월드”

2인조 남성가수 터보가 부른 ‘사이버 러버(cyber lover)’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여자와 온라인으로만 교류하며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방송인 김흥국 씨가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시버 러버’라고 잘못 발음하며 소개해 웃음을 주기도 했지요.

어쨌든, 오늘은 ‘만질 수 없는 그대’인 사이버 러버에 열광하는 남자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2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사이트 아프리카TV의 한 여성 BJ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BJ란 ‘Broadcasting Jockey’의 준말로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를 말합니다. SNS에 따르면 이 여성 BJ가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사이에 진행한 방송에서 남자 시청자 2명에게 별풍선을 17만여 개나 받았다고 합니다. A라는 아이디를 가진 남성이 12만여 개를, B라는 아이디를 가진 남성이 5만여 개를 경쟁적으로 줬다고 하네요.

별풍선이란 아프리카TV에서 운영하는 유료 아이템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시청자가 개당 110원(부가가치세 포함)을 지불해 구입한 뒤 마음에 드는 BJ에게 선물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에게 받은 별풍선 개수에 따라 BJ 인기도가 평가되는데요, BJ들은 이 별풍선을 돈으로 환전할 수 있습니다. 일반 BJ는 별풍선을 개당 60원으로, 아프리카TV가 뽑은 베스트 BJ는 개당 70원으로 환전할 수 있습니다.

SNS에서 화제가 된 여성은 베스트 BJ니까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방송 한 번에 무려 1190만 원(별풍선 17만 개×70원)을 번 것입니다. 또 별풍선을 준 남성 두 명은 하루 만에 합쳐서 총 1870만 원(별풍선 17만 개×110원)을 쓴 거고요.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여성에게 이런 큰돈을 주는 남자들이 있다는 게 정말 사실일까요? 저는 26일 새벽 이 여성 BJ의 방송을 직접 시청해봤습니다.

방송은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각종 질문을 하면 여성 BJ가 대답하는 식으로 이뤄집니다. 한 시청자가 채팅방에 “전날 방송에서 별풍선을 17만 개나 받았다는 게 정말이냐”고 메시지를 띄우자 그녀는 “어제처럼만 같으면 집 한 채 사겠어∼ 그 정도?”라며 자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별풍선 개수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방송을 보니 SNS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본 여성 BJ는 3시간 만에 별풍선 4만2000여 개를 받았으니까요. 방송 한 번으로 대략 300만 원을 번 겁니다. 이 BJ는 100개 넘게 별풍선을 주는 남자들에게는 원하는 노래를 불러주는데 가사에 해당 남성의 아이디를 넣어 불러주는 센스도 보여주었습니다. 남자들의 신청곡 대부분은 여성이 남성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 노래들이었습니다. 이를 듣는 남성은 채팅창에 하트 모양을 입력하며 화답했고요.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별풍선을 많이 사준다 해서 여성 BJ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본 방송에서 한 남성은 별풍선을 무려 3만2000여 개, 돈으로 환산하면 352만 원을 보냈습니다. 이 남자는 바로 전날 이 BJ에게 별풍선 5만 개를 선물했다고 알려진 B라는 남자였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B는 별풍선을 38회에 걸쳐 나눠 보냈는데 한 번에 보내는 별풍선 숫자마다 특별한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를테면 486개는 ‘사랑해’, 283개는 ‘이쁘삼’, 1253개는 ‘이리오삼’을 뜻한다고 하네요. B의 ‘별풍선 행진’을 보던 또 다른 남성 C가 자극을 받았는지 총 9회에 걸쳐 별풍선 5304개를 쏘더군요. C는 별풍선을 통해 ‘천사’(1004개) ‘이쁜이’(282개) 등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별풍선이 쏟아지자 BJ는 너무 좋아하면서 “오빠 나 이렇게 좋아해도 돼요?”라며 수줍게 웃더니 고급 아파트 이름을 대며 “(월세 청산하고) 전셋집으로 이사가야겠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남자 시청자들끼리의 별풍선 경쟁이 과열되자 “돈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말리는 ‘관용’까지 보여주더군요. 남성들은 여성 BJ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탄하죠.

대다수 대중은 ‘잡을 수 없는 풍선’ 같은 사이버 러버에게 거액을 아끼지 않는 이런 남성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이버 러버를 향한 남성들의 금전 공세를 실제로 확인하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복의 기준이란 게 사람마다 참 다를 수 있겠다.’ 여성 BJ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아이디를 불러주며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행복’이라고 믿는 남자들…. 취향이니 존중해야겠죠?

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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