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저렇듯 천천히 흐르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들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아폴리네르가 연인이었던 마리 로랑생을 그리며 이 시를 썼다는 설이 있다.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가 옛사랑의 장소에서 사랑과 인생의 깊은 맛을 곱씹는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그 순간 실제로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테다. 비애감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위안을 주는 저녁 종소리. 화자는 가슴이 찢어지지만, 실연의 처절한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을 삶의 한 양태로, 자연의 이치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피 끓는 한창 나이에 이렇게 정신이 성숙하기도!
이것이 시다! 정치판도 뒤숭숭하고, 우중충 삭막한 나날인데 봄의 나무에 수액 올라오듯 시흥(詩興) 도도한 시를 읽으니 기분이 산뜻해진다. 삶의 숨통을 틔워주는 예술의 힘! 이러한 시가 점점이 모여 파리라는 도시의 아우라가 생긴 것. 프랑스 사람이 아닌 독자들은 이 시에서 이국정취를 물씬 느끼리라. 이국정취란 먼 곳으로 이끄는 힘이다. 사람을 상당히 설레게 한다. 사랑의 도시, 낭만의 도시, 예술의 도시. 파리, 파리, 파리! 우리나라에도 어디엔가 사랑과 낭만이 흐르는 강과 다리가 있을까? 서울의 강과 다리는 넓고 깊은 강 위에 높은 다리들, 거기에는 자동차들만 쌩쌩 달리지. 그 광경을 떠올리고 가슴 설레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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