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가 끝나도 주부들은 명절증후군을 달래고 남은 음식도 정리하며 여전히 한 주가 바쁘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친지들을 위해 넉넉하게 준비하다 보면 음식은 항상 남게 마련이다. 최근의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세계 음식물의 3분의 1은 쓰레기로 배출되며 그 양은 13억 t에 이른다. 한국도 전체 음식물의 7분의 1가량이 버려지고, 처리비용만 약 6000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바뀐 서울 난지도 근처의 성산동에서 필자는 20대를 보냈다. 동이 트면 매캐한 냄새와 뿌연 안개로 하루를 시작했고 비가 올 양으로 궂은 날에는 악취로 창문 열기도 어려웠다. 난지도의 쓰레기 더미가 거대한 두 개의 산으로 변해갈 무렵 정부는 세계 최대의 수도권 매립지 건설계획을 발표했고, 1992년 개장한 매립지는 김포 주민과의 갈등으로 연일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그 후 필자가 미국에서 폐기물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은 쓰레기종량제 실시로 폐기물 감량에 성공한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소개됐다. 동시에 시민의 뇌리에서 난지도나 김포매립지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수도권매립지 연장 논란을 보면서 역사는 반복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특히 최근 정부가 제시한 음식물쓰레기 해법은 우리나라 폐기물 관리가 아직 공급자 위주의 행정편의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과거 쓰레기종량제의 성공신화만 믿고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를 손쉽게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종량제는 오염자부담원칙에 의한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품 분리배출 유도에 그 목적이 있다. 종량제 이후 10년의 평가 결과를 보면 실시 후 2, 3년 동안은 폐기물 발생총량이 약 4만4000t까지 줄었으나 그 이후 다시 완만하게 늘어나 현재까지 5만 t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음식물쓰레기는 정부가 20년 이상 감량과 자원화를 위해 꾸준히 지원해 왔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지금까지 5000여억 원의 국고와 지방비를 투입했는데도 자원화율은 낮다. 음식물쓰레기로 만든 사료와 퇴비는 질(質)이 좋지 않아 유상 판매가 어렵다. 업자들의 불법 처리, 악취 발생, 고농도 음폐수 처리 등 다른 문제도 한둘이 아니다. 결국 최근 정부가 제안한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나 음식물분쇄기 사용 확대 방안은 기존 정책의 실패를 의미할 뿐이다.
1995년 종량제 실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이 길거리 휴지통이다. 아침 출근시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음식물쓰레기가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손에 든 아저씨를 목격하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재활용품 수거일에 맞춰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데도 쓰레기처리에 적자가 난다고 하니 정부가 가장 먼저 들고 나오는 대안이 또다시 과금(課金)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부가 국민을 섬기는 방식인가.
우리나라 전체 폐기물 중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폐기물의 비중은 매년 약 14% 수준으로 과거 추이를 볼 때 음식물쓰레기를 급격하게 줄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2010년 쓰레기종량제 연보를 보면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쓰레기 처리비용 수지를 나타내는 ‘청소예산 재정자립도’는 10% 미만부터 90% 이상까지 천차만별이다. 음식물쓰레기는 오히려 수입이 처리비용보다 많은 자치단체도 간혹 발견된다. 쓰레기처리 비용의 약 70%는 수집과 운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공동주택의 쓰레기처리는 이점이 크다. 그러나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나 사료로 만드는 것은 축산농가나 농촌에서는 기대할 만하지만 아파트 밀집지역에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음식물분쇄기는 하수관거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시행이 곤란하다.
담당공무원은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을 방문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230여 개 지자체별 쓰레기처리 비용이 왜 천차만별인지, 혹시 탁상행정으로 가격을 결정하지는 않았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실험은 실험실에서, 시범사업은 시범사업단지에서 해야 한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장기간 정책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 문제 발생 때마다 가격으로 관리하겠다면 정부가 사기업과 뭐가 다른가. 기본적 공공서비스에 대한 과금이나 요금인상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보충적 수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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