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현우]기소 의원, 당과 국회가 먼저 제재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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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18대 총선에서 당선무효로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은 15명이었다.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의원 중 이런저런 혐의로 법원에서 당선무효나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은 의원은 모두 17명이며, 이들 중 4명은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고 나머지 의원들은 최종심을 기다리고 있다. 선거사범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1년 이내에 모든 사법 절차가 종결되지만 그 이외의 범죄는 판결기한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의원 임기를 다 채울 때까지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현직 의원이 재판에 회부되고도 항소와 상고를 통해 계속 법정 다툼을 벌인다면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 의원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의원은 아무런 제약 없이 의정 활동을 할 수 있고, 나중에 최종심에 따라서는 자격 없는 범법자가 법 제정을 포함한 중요한 국가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기소된 의원이 향후에 유죄 판결을 받고 의원 자격을 상실한다면 그 이전의 입법 활동이 적절했던 것인지 상식적으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자격이 없는(자격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이 오랫동안 국민을 대표하는 것을 사전에 막을 방법이 없다.

현직 의원은 구속된 경우에도 최종 판결 이전까지는 의원 신분에 변함이 없다. 구속된 의원은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도 국민이 낸 세금에서 꼬박꼬박 세비를 받는다. 올해 국회의원 연봉이 작년보다 16% 이상 오른 1억3796만 원이라니 매달 10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받는 셈이다.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보편적 원칙도 국회의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셈이다. 일반 국민이 구속돼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다니던 회사에서 월급을 줄 리가 만무하다. 더욱이 국회의원은 차후 의원직을 잃을 정도의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도 그동안에 받은 세비를 국가에 반납할 의무도 없다.

이처럼 재판 중인 국회의원들이 신분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만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법률로서는 해당 의원을 규제할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는 일반 국민보다 더 높아야 한다는 점에서, 또한 의원들의 행위가 정당성을 부여받기 위해서라도 기소된 의원들에게는 국회와 정당 내부에서 적절한 규정과 관례를 만들어 일정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

참고할 만한 것이 미국 의회와 정당의 내부 규정이다. 미국도 법률 때문에 중범죄로 기소된 의원들의 자격이나 권한을 박탈하거나 제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법 이전에 의회와 정당 내부의 규정을 통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똑같이 징역 2년 이상의 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범죄 혐의로 기소된 의원에 대해서는 그 의원이 속한 모든 위원회에서 위원장직을 포함한 모든 위원 직책을 박탈한다. 그리고 소속 정당 내의 모든 직책에서도 일단 사임해야 한다. 만일 기소된 내용대로 중범죄로 유죄 판결이 난 경우 의회 규칙에 의거해 상급심에서 무죄가 재확정될 때까지는 위원회에서의 모든 활동은 금지되고 본회의장에서 투표와 질의에도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국연방법률집에 따르면 출석하지 않은 의원에 대해서는, 가족이나 본인이 병에 걸린 경우를 제외하곤, 일비(日費) 개념으로 세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구속된 의원에 대해서는 세비를 지불하지 않을 수 있다.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회 제명이 논의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신분은 국회의원이며 9월 세비도 지급됐다. 비단 이 의원뿐 아니라 각종 비리에 연루돼 재판에 계류 중인 의원들도 현직 의원으로서 권력과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은 국민들로서 언짢기 그지없다. 가뜩이나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불신 받고 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앞다퉈 국회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당과 국회가 기소된 의원만이라도 스스로 제재한다면 국회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툭하면 제 식구 감싸기로 비난받는 윤리특위보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제살을 깎아내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quick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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