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제목 싸움이다. 기자가 된 뒤 늘 그렇게 배웠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목이 많으면 이긴다. 눈길 잡자고 속이면 안 된다. 한가한 낚시질이 아니다. 그야말로 정면승부다. 기자는 첫줄(리드·lead) 쓰기에 다걸기를 한다. 그 한 줄이 곧 제목이니까. 리드가 안 떠오르면 단 한 글자도 못 나간다. 딱 맞는 첫 줄을 찾으면 일필휘지(一筆揮之)의 신기(神技)가 발휘된다.
1월 어느 날. 태스크포스(TF)가 꾸려지고 짧은 특명이 내려졌다. ‘동아미디어그룹 연중기획의 주제는 통일, 마감은 동아일보 창간 93주년(2013년 4월 1일).’ 20여 명의 TF 팀원은 흩어져서 대한민국 최고의 통일 전문가들을 만났다. 모여서 ‘통일의 작은 a부터 큰 Z까지’를 난상 토론했다. 3개월 고민과 번뇌의 종착역은 결국 제목 찾기. 딱 한 줄이 필요했다. 다시 끝없는 고뇌의 시간. 웃고 떠드는 대화, 살벌한 토론, ‘그냥 막 던져보기’ 속에서 세 가지가 공감됐다. ①통일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겠다 ②그러나 통일은 반드시 온다 ③준비하면 대박이고, 안 그러면 쪽박이다. 세 줄을 한 문장으로 줄이는 데 또 시간이 필요했다. 애 둘인 여자 후배가 말했다. “선배, 이런 정성이면 애 하나 더 낳겠어요.”
리드가 정해지니 그 다음은 일필휘지. 통일코리아프로젝트의 7대 중점과제를 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①통일 이익이 분단 비용보다 크다(통일의식 제고) ②북한 어린이는 통일코리아의 미래다(북한 영유아 지원) ③녹색 통일 시대를 열자(북녘 산림녹화) ④작은 통일부터 이루자(탈북자 정착 지원) ⑤이제 만나러 갑니다(이산가족 문제) ⑥통일을 카운트다운하자(통일예측 프로젝트) ⑦통일교육을 업그레이드하자.
7대 과제도 막판 제목 논쟁이 있었다. 테제(강령)냐, 제안(提案)이냐, 제언(提言)이냐. 결론은 ‘다짐’.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를 통일에 대해 훈수하듯 말하는 건 만용(蠻勇)임을 공감했다. 다짐은 통일을 준비하는 각계각층의 노력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겠다는 자기약속이다.
4월 1일 창간기념호에서 7대 다짐을 밝힌 뒤 6개월여. 그 약속을 실천하려는 작은 노력 속에 많은 사람과 장면을 만났다. 대한민국 20대의 33.4%가 ‘절대 통일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만났다. 11세 남자 어린이의 남북 키 차이는 19cm, 몸무게 차이는 16kg이란 믿기 싫은 통계를 만났다. 남한 산림녹화를 주도했던 고건 전 총리의 녹색 통일에 대한 집념을 만났다. 탈북 청소년에게 음악교육을 재능기부하는 사단법인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의 따뜻한 마음을 만났다.
지난 주말 중년의 아들과 노년의 아버지(75)가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매년 서너 차례 방문하는 부자(父子)의 데이트 코스. 유해를 찾지 못한 10만4000여 위의 호국용사 중 큰아버지 이름이 있다. 그는 1953년 정전(7월 27일)을 13일 앞두고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전사했다. 북한이 정전기념일을 ‘전승절(戰勝節)’이라고 멋대로 부르는 걸 아버지는 정말 싫어한다.
“아버지, 통일이 언제쯤 될까요.”
“글쎄. 되려면 갑자기 될 것 같기도 하고….”
북한군 총칼에 숨진 큰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통일 얘기를 나눈 건 처음이었다. 통일 준비는 어쩌면 이런 짧은 대화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이번 주말에는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꼭 챙겨 보는 어머니의 통일 전망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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