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6년 전 오늘 ‘10·4 남북 정상선언’의 어둡고 긴 그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4일 03시 00분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한 뒤 10·4 남북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지 6주년이 되는 날이다. 6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성과는 없이 국가적 분란만 초래한 정상회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성 발언이 들어 있는 대화록 내용도 문제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화록 삭제 의혹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2차 남북정상회담은 시기부터 적절치 못했다. 넉 달 후면 물러날 대통령이 대선 두 달 전에 종신집권이 가능한 김정일을 만나 남북의 중대사를 논의한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임기 말 성과에 집착한 과욕이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구나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시종 굴욕적인 자세를 보였다. 장병들이 피 흘려 지킨 NLL을 “이상하게 생겨가지고, 무슨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 돼 있다” 운운하며 포기로 들릴 만한 발언을 했다. “임기 마치고 난 다음에…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게 좀…”이라고 사정하는 대목은 낯 뜨겁다. 대화록이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국민은 까맣게 모를 뻔한 사실들이다.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으로 넘기지 않은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대화록을 보고받은 뒤 “이런 말 한 적 없으니 수정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혹시 김정일과 대화를 나눌 때는 기분이 들떠 의식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대화록을 읽어 보니 차마 부끄러워 국민이 못 보도록 조치한 것은 아닌가.

10·4선언의 합의 내용을 다 이행하려면 최대 116조 원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엄청난 액수의 어음을 남발했고, 다음 정권에 이행을 강요하는 ‘대못 박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민족의 최대 위협인 북핵에 대해선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에게 국제사회에서 ‘북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어느 모로 보나 국가와 국민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처신은 아니었다.

형식도 내용도 모두 비정상적인 이런 정상회담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5년 임기 중 한 번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장소와 이슈 선정, 방식까지 모두 정상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오늘날과 같은 뒤탈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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