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이 회사의 자금 위기를 숨기고 채권과 기업어음(CP)을 판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투자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불완전 판매’ 논란이 일면서 집단 소송 사태로 번질 조짐이 있다. 동양그룹은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이어 핵심 계열사인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에 대해서도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특히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CP와 유사한 자산담보부 전자단기사채(ABSTB)를 추석 직전까지 1569억 원어치를 판 뒤 법정관리를 신청해 ‘사기성 채권 발행’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진석 동양증권 사장은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 가능성은 없다”며 직원들에게 판매를 독려했다는 것이다.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관련 채권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동양시멘트는 우량 계열사로 법정관리 신청은 뜻밖이다. 그룹 대주주 일가가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채권단이 관리하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의혹도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그룹 5개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는 4만6000명, 액수로는 2조3000억 원이나 된다. 동양증권 제주지점에서 금융상품을 팔았던 한 여직원은 그제 “고객들의 피해가 없었으면 한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양증권 임직원들은 “경영진의 말을 믿고 채권과 어음을 팔았다”며 법정관리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경영진이 어떤 의도로 어음과 채권을 발행했는지 규명해야 한다.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동양그룹이 은행을 통한 정상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발행한 지 수년째다. 그런데도 금융 당국은 모니터링도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부실 계열사 투자 권유 금지 규정을 만들었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몰려든 투자자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양그룹의 회사채와 기업어음은 몇 개월 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연 7∼8%의 고금리에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까지 붙어 있어 수익성과 안정성이 다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회사들의 신용등급은 투자부적격 등급에 속했다. 기업 부도가 현실화하고 나서야 ‘독이 든 사과’라는 걸 깨달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