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토머스 프리드먼]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7일 03시 00분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극우 강경 ‘티파티 당원’들이 초래한 미국 연방정부의 ‘정부 폐쇄(셧다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인질극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만이 아니라 국가통치 원칙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미국 정치를 형성해 왔던 구조적 변화들이 발화점에 이르고 있다. 의회 소수파가 자기 정당뿐 아니라 정부 전체를 맘대로 위협하고 있다. 무서운 건 바로 의원들이 정치적 처벌 없이, 심지어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높은 믿음을 바탕으로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의회를 통과해 대통령이 사인했으며 대법원까지 손들어준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승부를 보면 된다. 하지만 재정이라는 무기를 국가에 겨눈다면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진다.

셧다운을 피하려고 진행한 11시간의 의회 토론에서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오바마케어 시행 연기에 민주당 의원들이 모두 ‘예스’라고 말하면 내일이라도 정부 재정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끄러운 말이다. 의회가 “돈만 주면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첫 번째 이유는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에 유리한 선거구 조정 행위)이 새로운 형태로 변화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다양성을 보여주는 전국적인 현실과 동떨어진 백인 공화당 아성이 만들어졌다.

2000∼2010년 미국 백인 비율은 69%에서 64%로 줄었지만 2012년 선거구 책정 시 공화당 우세지역의 백인 비율은 73%에서 75%로 증가했다. 반면 민주당 우세지역에선 백인 비율이 52%에서 51%로 감소했다. 미국 내 인종 분포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공화당 지역구에선 백인이 늘어난 것이다.

선거구 개편 이후 민주당 우세 지역은 144곳에서 136곳으로 감소했다. 반면 공화당 우세 지역은 175곳에서 183곳으로 증가했다. 47곳의 우세지역을 더 갖고 시작하는 공화당의 장악력은 더 커졌다.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국가를 인질로 삼은 티파티 멤버가 정치적으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0년 기업의 특정 후보 선거광고 금지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를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린 대법원의 ‘셸던 아델슨 판결’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재벌들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치인을 더욱 오른쪽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콜로라도 주에선 사상 최초로 진행된 주민소환투표에서 총기규제법안에 찬성했던 주 상원의원 2명이 퇴출됐다. 미국총기협회에서 40만 달러(약 4억2840만 원)를 기부 받은 극단적 총기 찬성론자들이 주도했다. 돈만 있다면 주 상원의원도 몇 주 만에 쫓아낼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가 하면 공화당은 라디오 토크쇼와 폭스뉴스 등 그들만의 미디어 세계를 창출했다. 극우 성향의 정치인은 관심과 찬사를 받고 강경에서 선회하면 채찍질을 당한다.

이렇듯 정치자금과 미디어, 그리고 선거구 개편으로 만들어진 3가지의 환경 변화는 극우 성향의 공화당 지지자들로 하여금 다수 민주주의의 존엄성마저 경멸해도 별 상관없다는 오만함을 키워주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오바마케어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 민주주의도 함께 지키고 있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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