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예나]국민이 낸 세금 100억을 포기하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8일 03시 00분


최예나 사회부 기자
최예나 사회부 기자
“원고(대한민국)는 채권(17억3695만 원) 중 절반에 해당하는 금원(8억6847만 원)에 대한 청구를 포기하라.”

서울중앙지법 민사35부(부장판사 이성구)는 7일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 가족 구모 씨(79) 등 5명이 과다하게 지급받은 배상액 중 절반을 국가가 포기하라는 취지로 화해권고 결정을 냈다. 민사35부는 인혁당 재건위 피해자 강모 씨(85) 등 4명에 대한 소송에서도 4일 ‘채권(15억3017만 원) 중 절반을 포기하라’고 권고했다.

이 화해권고는 국가정보원이 7월 인혁당 재건위 피해자 열여섯 가족(77명)을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한 법원의 절충안이었다.

이들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게 인정돼 2009년 1, 2심에서 759억 원을 배상받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1년 지연이자 산정이 잘못됐다며 1, 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1, 2심은 손해배상의 지연이자 계산 시점을 유죄 판결이 확정된 1975년과 1976년으로 봤지만 그동안 통화가치 변동으로 과잉배상의 우려가 있다”며 지연이자의 발생 시점을 항소심 변론이 종결된 시점(2009, 2010년)으로 봤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은 미리 받은 배상액 일부(490억 원) 중 211억 원을 국가에 돌려줘야 했다. 피해자들이 계속 배상액 반환을 거부하자 국정원은 올 7월 소송을 냈다.

화해권고를 내린 취지에 대해 법원은 “당사자의 형편을 고려하고, 사건의 공정한 해결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일부 피해자와 가족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 것을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으로도 법원이 이런 식의 결정을 낸다면, 잘못 나간 세금 100억 원은 돌려받을 길이 없다. 국정원은 서울고검 송무부(부장 신유철 검사장)의 지휘를 받아 다음 주 법원에 이의 신청을 낼 예정이다.

피해자와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국가는 분명 배상액을 지급했고, 잘못 지급된 부분을 돌려받으려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이 대법원 판결을 뒤집으면서까지 화해권고를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원이 여론을 의식해서 세금 낭비는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8월에 과다 지급된 배상액 18억4137만 원을 국가에 반환한 두 가족(4명)은 법원의 권고를 어떻게 볼까.

최예나 사회부 기자 yena@donga.com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인혁당#재건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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