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무수한 꽃이 있다. 장미, 백합, 국화, 도라지꽃, 호박꽃, 싸리꽃…. 꽃마다 형태나 향취가 다르다. 화려한 꽃, 청초한 꽃, 우아한 꽃, 소박한 꽃, 그리고 음란한 꽃도 있다. 음란한 꽃, 가령 검붉은 양귀비꽃. 그처럼 음란한 마음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햇빛 화창하고 새들 지저귀는 날은 아니리라. 하늘이 어둑어둑하고, 비가 보슬보슬 오는 축축한 날, ‘음란세포’가 양귀비꽃처럼 피어나면 ‘가는귀먹는다’. 옳은 소리가 안 들린다는 말이다. 곰팡이 포자처럼 퍼지는 음기(淫氣)에 압도당해 화자는 ‘납작 엎드린 채 부란(腐爛)’한다. 부란은 썩어 문드러진다는 뜻이란다. 예술성이니 아름다움을 잇는 총명한 세포가 썩어문드러지고, ‘음란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그런 날! 참 노골적인 시다.
왜 음란함은 아름답지 않게 느껴질까? 어두컴컴하고 스산하고 퇴폐적이고…. 양귀비도 버젓한 꽃이고, 음란도 삶의 한 요소다. 하지만 양귀비가 지배하는 인간은 위험하리라. 건강한 남녀한테 하루 평균 몇 번 성욕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있다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한가할까 싶다.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성욕이라는 게 평소 전혀 생각이 없다가 느닷없이 해일처럼 밀려오리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사람들 오가는 광장에서 수음을 하며 탄식했단다. “배고픔도 이처럼 배를 문질러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성욕과 식욕(디오게네스가 말한 건 식욕이 아니라 굶주림이지만), 세세토록 변치 않을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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