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아웅산에서 숨지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의 현재가 달라졌을 것이다.” 부가가치세, 물가안정, 정보통신 혁명, 수입자유화 조치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1970, 80년대 한국 경제는 김재익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김재익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했다는 말은 지금도 어록으로 남아 있다.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김재익에게 경제 전권을 주었던 이 결단으로 숱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경제에선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들었다.
▷김재익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물가를 잡은 일이다. 80년대 초반의 엄청난 인플레이션은 성장의 장애물이자 서민에겐 고통이었다. 신군부는 몽둥이로 기획원을 두들겨 패서라도 물가를 잡겠다고 했지만 군인의 발상일 뿐, 어디 경제가 그렇게 돌아가는가. 김재익은 각계 반발을 무릅쓰고 추곡수매가와 임금 상승률을 낮추고 1984년 정부 예산을 동결해 무섭게 날뛰던 물가 고삐를 잡았다.
▷아웅산 사태 30주년을 맞아 아웅산에서 숨진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한 평전이 출간됐다. 평전 속의 김재익은 컴퓨터와 같은 두뇌를 가진 천재, 탁월한 경제 관료이기 이전에 겸손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나 ‘내연기관의 작동원리’처럼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가 국보위에 참여한 것을 두고 대학생 아들 친구들이 “김일성 밑에 가서도 일할 사람”이라고 하자 “김일성을 설득시킬 수 있다면 해야지”라고 말한 얘기는 유명하다.
▷평전의 공동저자인 고승철 나남사 주필은 신문기자 시절인 1987년 편집국장의 취재 지시를 받고 월간지에 게재할 특집을 준비하며 김재익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경세가로서의 탁월한 안목과 해맑은 인품에 반해 그를 제대로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게 됐다. 대한민국 경제를 살찌우려는 김재익의 열정이 저널리스트의 집념을 만나 평전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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