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준우 정무수석은 어디에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9일 03시 00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파격적 ‘인사 실험’이 시작된 지 두 달이 넘었다. 올해 8월 초 정무수석에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씨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외교안보수석을 교체한 것으로 잘못 알았다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박 수석에게 “외교 경험을 살려 선진 정치문화를 정착시켜 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박 수석에 대한 정치권 반응은 냉담하다. 며칠 전 국회 운영위원회가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결같이 박 수석을 질책했다.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정무수석 하는 일이 뭐냐”고 따졌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식사는커녕 전화 통화 한번 해본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아무리 잘 만든 정부 정책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헛수고다. 원만한 대야(對野) 관계를 만드는 것이 정무수석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은 정무수석의 최대 임무다. 그러나 추석을 앞두고 열린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 회담은 오히려 정국의 갈등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박 수석이 청와대와 여야 사이를 오가며 가교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현재 여야 간 대치정국의 모든 책임을 박 수석에게 돌릴 수는 없다. 박 수석이 임명되기 전에 야당 대표는 서울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돗자리를 깔았다. 여야가 각종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마당에 정무수석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정치권 밖에 있던 박 수석이 임명된 이후 국회의원들이 요구하는 각종 정부 상대 민원이 잘 처리되지 않자 여야가 함께 텃세를 부린다는 말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의 구태다.

그럼에도 정무수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정국은 윤활유 떨어진 기계처럼 삐걱댈 수밖에 없다. 정무수석의 활동 공간은 대통령이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 여야가 정무수석에게 주문한 사항을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정무수석에게 힘이 실린다. 박 수석은 ‘윗분’을 모시는 비서 가운데 한 명으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해선 안 된다. 현 정부에는 국회와의 소통 창구였던 정무(특임)장관도 없다. 박 수석은 청와대와 여야를 잇는 유일한 끈이라는 각오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그래야 박 대통령의 이미지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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