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진당의 대리투표 무죄 판결, 상식에 어긋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9일 03시 00분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송경근)가 통합진보당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피고인 45명에 대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부산 대구 광주지법 등 다른 6개 법원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내려진 유죄 판결과 배치될 뿐 아니라 상식과도 동떨어진 것이다.

재판부는 대리투표 행위에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로 “헌법이나 법률에 보통 직접 평등 비밀 투표 등 공직 선거의 4대 원칙을 당내 경선에서 지켜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부산지법은 “대리투표는 허용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는 한 금지되는 것”이라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도 대리투표는 없다. 따로 규정을 마련해 대리투표를 특별히 금지하지 않으면 금지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논리는 납득할 수 없다.

비례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과는 달리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 정당에 선출을 위임한다. 주민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얻는 지역구 의원과 달리 비례대표는 정당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뽑아줄 때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정당이 반드시 경선으로 비례대표를 뽑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외에서 비례대표를 지명이나 공천으로 뽑는 사례도 많다. 이 경우 지명 혹은 공천하는 당대표나 당내 기구가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비례대표 선출을 위해 경선을 택했다면 선거 공정성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 대부분이 신뢰 관계가 있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1인 1표를 위임받은 것이 고작이라는 이유로 조직적 대리투표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4표까지 위임받은 피고인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재판부에 배당된 피고인은 45명에 불과하지만 같은 사안으로 기소된 사람은 510명에 이른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석기라는 사람이 경선에서 급부상해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있다. 재판부가 이런 사태를 가볍게 여기는 듯하다.

재판부는 독립돼 있기 때문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법원이 2심, 3심제를 둔 이유는 독립된 재판으로 인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상급심에서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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