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문·이과 유지를 제1안으로 하는 대입제도 방안에 대한 ‘문·이과 프레임 깰 때다’라는 칼럼(9월 13일자)에 많은 의견을 들었다. 한국인은 모두가 교육전문가, 정치평론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많은 분이 고견을 주었다.
독자 김유진 씨는 “어쩌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 해서 모든 개의 꼬리를 자르면 되겠느냐. 문·이과 구분은 지식을 전달하는 제도로서 사회가 오랜 기간 수용한 제도다. 문제는 문·이과 구분이 아니라 양자택일(兩者擇一)에 길들여진 우리의 사고방식”이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독자 정근용 씨는 “깊이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 분야의 대가를 키워내고 이들이 더 큰 성과를 내도록 다양한 분야를 섭렵할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문·이과 분리의 문제점만 지적하고 자기 분야만 파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주장이 넘친다”며 비판했다. 무조건 섞는다고 능사가 아니며 탄탄한 전문지식이 있어야 더 큰 스케일에서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다는 요지였다. 일리 있는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뀐 현 시대에 문·이과 분리 교육이 맞지 않다는 데 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표시했다. “33년 전 미국에 유학 와서 연구소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느낀 바가 있습니다. 어느 선에선가는, 창의력 부족으로 인해 넘기 힘든 벽이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한국에서 문학 철학 음악 미술 등을 외면하고 집중적인 이과 중심 교육만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물과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너무 기계적이었습니다. 기계적인 생각으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미 국립오크리지연구소에 근무하는 김석호 박사가 보내온 글이다.
문·이과 구분은 2002년 제7차 교육과정과 함께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대학수학능력시험 탐구영역에서 문과는 사회탐구를, 이과는 과학탐구를 선택하게 돼 있는 수능 때문에 문·이과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공교육을 융합형으로 바꾸려면 융합형 수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얘기다.
융합형 수능은 정부가 내놓은 3개 방안 가운데 가장 혁명적 변화를 요하는 만큼 도입이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교육의 두 축인 교사와 학부모의 반발이 만만찮다. 필요성은 인정해도 교사는 준비가 안 됐다는 이유로 주저하고 학부모는 학습 부담 증가를 우려한다. 학교 현장의 준비가 미흡한 건 사실이다. 교사들이 문·이과 분리체계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융합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대 사범대 시스템을 융합형으로 먼저 바꾸고 난 뒤 통합형 수능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학부모의 걱정은 문과 학생이 이과 과목을, 이과 학생이 문과 과목을 공부함으로써 학습량이 늘어날 것이란 점이다. 이는 현재 수능 체제를 상정하고 모든 공부를 사교육으로 해결하려는 학부모들의 오해일 가능성이 크다. 독일 입시인 아비투어는 문·이과 구분 없는 융합형이지만 학습 부담이 적다. 우리 수능이 학생에게 만능을 요구하는 반면에 아비투어는 좋아하는 몇몇 과목만 시험 보게끔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체계가 융합으로 가야 하는 것은 필연이지만 그 시점을 2017년도로 못 박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17년도는 박근혜 정부 집권 마지막 해다. 입시 제도를 치적과 연결시켜 추진하다가 수준별 수능을 한 번만 치르고 없애야 하는 이명박 정부 짝이 날 수 있다. 국민한테 다짜고짜 수능 형태를 선택하라고 내던질 게 아니라 정부가 좀 더 정교하게 정책을 짠 뒤 융합 교육에 대한 장·단기 로드맵을 내놓는 게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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