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67>폐가 노래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1일 03시 00분


폐가 노래한다
―하야시 후미코(1903∼1951)

새가 빛난다.
도시 위에서도 빛난다
새가 하얗게 빛난다
거리엔 꽃가루가 흩날리고, 전신주의 꼭대기가
흔들려요 흔들리고 있어요
머물 곳이 없다.
폐가 노래한다, 짧은 경치 노래인 걸.

갈색 빗속을
나는 귀를 막고 걷는다
귀가 아파, 아파요
빗속에서 새가 빛난다
발버둥치면서 난다
아득한 황야에 바람의 꿈
폐가 노래한다, 짧은 경치 노래인 걸.

나는 무엇 때문에 걷는 걸까
새의 운명이다
새처럼 어딘가에서 나는 태어났다
머물 곳이 없는 밤
반짝이며 난다

내가 빛나는 것이 아니다
사방의 광선이 와아 하고 웃는 것이다
나의 폐가 노래한다 그뿐인 거다….

혼자 사는 고양이, 혼자 사는 개
아무도 없는 길의 자갈돌
이슬이 사라진다
새의 하늘, 빛나는 새
못을 빼듯 매끄러운 빛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다만 빛나는 새
폐가 노래한다. 폐만이 노래할 뿐이야.


시인이 27세였던 1930년 출간한 자전적 소설 ‘방랑기’에서 옮겼다. 사생아인 시인의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는 가난하고 허황하고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어려서부터 가족과 더불어 싸구려 여인숙을 전전하며 사느라 초등학생 때 학교를 그만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가난이 극심해져 온 가족이 흩어진 뒤에는 일본 각지를 떠돌며 행상, 가정부, 술집 여급 등 무슨 일에든 달려들었지만 자주 배를 곯았다. 굶주림을 면하려고 남자를 찾아간 적도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시를 썼다. ‘방랑기’의 명민하고 굳센 주인공은 아직 무명인 20대 여성 시인들의 삶을 애틋하게 환기시킨다.

독신여성의 고독감을 잘 드러내면서도 음침하지 않고 발랄하다. 화자는 고독하게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지 않고, 빛을 선망하고 찬양한다. 비틀거리면서도 다만 빛나는 새!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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