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김정호 전 대통령 기록관리비서관(봉하마을 대표)은 “지금 수사는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상황과 유사하다”며 “노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지 말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검찰은 정치를 하지 말고 수사를 하십시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검찰은 짜 맞추기식 수사의 들러리로 죄 없는 실무자들을 소환해 괴롭히지 말고 나를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검찰 수사를 노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비리 수사와 연결짓는 것이나 ‘부관참시’ 운운한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논지(論旨) 이탈이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노 전 대통령도 재직 시의 행위가 평가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법에 따라 마땅히 국가기록원에 가 있어야 할 대화록이 사라졌다면 수사 당국은 그 경위를 밝히는 것이 당연한 책무다. 수사에 대한 언론의 취재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보도되는 것은 관행처럼 늘 있던 일이다.
문 의원은 국가정보원이 대화록을 공개했을 때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원본과 대조하라고 앞장서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의 요구가 없었더라면 국회 의결로 여야 의원들이 국가기록원을 검색하지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대화록 실종에 누구보다 큰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가 검찰의 정당한 수사를 ‘정치 수사’로 매도하고, 핵심 실무자들의 당연한 소환 조사를 ‘괴롭히는 일’로 표현하면서 “나를 소환하라”고 뒤늦게 보스 행세를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처신인가.
검찰은 일체의 정치적 계산을 배제하고 오로지 진실을 밝힌다는 자세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수사 결과에 따라 법적, 정치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응분의 책임을 지면 된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정쟁(政爭)을 종결하자”고 주장했지만 진실 규명도 하지 않은 채 검찰 수사를 중단할 수는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공개된 대화록의 왜곡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화록 녹음 파일의 공개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정쟁을 촉발시켜 국론 분열을 초래할 위험이 큰 만큼 삼가는 게 바람직하다. 검찰이 모든 의혹을 충분히 밝혀낼 경우 녹음 파일의 공개 자체가 불필요할 수도 있다. 대화록 실종의 진실 규명을 마치고 나면 당연히 정쟁도 끝내야 한다. 그러려면 문 의원을 비롯해 실종 사건에 관련된 모든 인사들이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