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아이들의 이목이 선생님과 함께 등장한 전학생에게 쏠린다. 전학생이 빈자리를 채우자 수업이 시작된다. 대학 연구팀이 아이들의 행동과 반응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관찰하려는 것은 반 아이들의 낯선 아이에 대한 공격성향이다.
연구팀은 전학생이 자리에 앉은 지 불과 4분 만에 첫 공격을 당하는 장면을 포착해 낸다. 옆자리 여자 아이에게 무시당한 것이다. 또 다른 여자 아이도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버린다. 성인 남성의 관점에선 여자 아이들의 이런 행동이 공격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격 무시나 혐오감 표출은 물리적 폭력과 양상만 다를 뿐 공격적인 행동이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육심리학 교수인 노마 페시바흐가 수행한 이 실험에서 남자 아이들의 첫 공격성향은 16분이 지난 후부터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들의 공격성향이 남자 아이들보다 빠르게 반응한 것이다. 남성들이 여성에게 기대하는 ‘착한 여자’는 권리보다 의무에 충실해 배우자 혹은 가족, 동료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다는 기준을 여성에게만 적용한 것이다. 많은 남성이 주변 여자들에게 착하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기대한다. 여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뉴욕시립대 심리학과 필리스 체슬러 교수는 “남성의 선입견과 달리, 여성도 남성만큼의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나 신체적으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간접적인 폭력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고 전한다. 여성의 공격성은 이른바 ‘정서에 대한 가해’로, 물리적 폭력보다 끔찍할 때도 있다. 열등감 혹은 수치심을 자극해 마음속에 좀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겨놓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세상이 그들에게 요구해 온 착한 여성의 가치에 맞춰 ‘좋지 않은 의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왔다. 그래서 내숭은 ‘남자들에게 보호본능을 일깨우는 기술’인 동시에 ‘의도를 감추고 착한 여성이란 착시를 일으키는 포장의 기술’이기도 한 것이다. 포장된 ‘좋지 않은 의도’는 남성들 눈에는 여간해선 발견되지 않는 반면 같은 여성의 눈에는 대번에 간파된다. 그들이 다른 여성의 내숭에 강렬하게 반응하는 데는 정의감 또한 작용하는 셈이다.
사실, 선과 악이라는 양상은 사람마다, 혹은 처한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를 때가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선과 악이라는 두 얼굴의 자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대부분의 남성이 ‘착한 여성’만을 기대하기 때문에 두 얼굴을 받아들이기 거북할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