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받고 싶다]집, 지금 사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4일 03시 00분


홍수용 기자
홍수용 기자
《 한국 직장인은 평균 만 53세에 은퇴한다. 국민연금은 현재 61세부터 나오지만 수령 시점이 점차 미뤄져 2033년에는 65세부터 나온다. 수입 없이 살아야 하는 ‘소득 보릿고개’ 기간이 8∼12년. 이 고개를 어떻게 넘을까. 인생 후반부가 달려 있다. 오늘부터 격주로 연재하는 본보 경제부 홍수용 기자의 ‘죽을 때까지 월급 받고 싶다’는 독자 여러분이 노후 고정수입을 버는 출발선에 서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부동산 연금 은행 증권 보험 세금 등 재테크 분야별로 행복한 인생 2막을 여는 데 필요한 제언을 담는다. 》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질문에 가격을 기준으로 답한다. 집값이 오를 것이니 사라거나 떨어질 테니 사지 말라는 식이다.

집 사는 기준은 주식과는 달라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감성이 지배하는 목표여서 집 사는 방법과 시기가 매우 즉흥적이다. 미래에 집 살 사람이 얼마나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주택공급)의 규모는 대충 알지만 물건 살 사람(수요)은 항상 미지수다. 공급과 수요가 만나는 점에서 가격이 형성되는데 수요를 모르니 가격 예측은 어렵다. 전문가들의 집값 전망이 두루뭉술하고 그것마저 틀리는 이유다. ‘내 집 마련’처럼 ‘내 주식 마련’이란 말이 있었다면 증권가의 예상 주가 적중률은 지금보다 더 형편없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나는 투기의도 없나’ 먼저 진단을

집값 폭락설이나 집값 급등설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가격이 자기 말대로 되면 ‘그것 보라’며 으쓱해하고 틀리면 ‘더 두고 보라’며 버티는 경향이 있다. 전망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현재 유력한 집값 시나리오는 내년에 반짝 올랐다가 다시 소폭 하락해 보합세를 유지한다는 정도인데, 이 정도 밝기의 손전등만 갖고 정글로 뛰어들 순 없다.

집 투자 전에 해야 할 일은 가격 이외의 위험과 기회를 파악하고 각각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기회가 더 크면 집을 사고, 위험이 더 크면 안 사면 된다.

위험의 크기를 재보자. 먼저 ‘나는 투기의 의도가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솔직히 답해보라. 집을 산 뒤 곧 되파는 방법으로 큰돈을 벌고 싶은 생각이 재테크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는지 진단하라는 것이다. 지금 시장엔 이런 의도를 받아줄 수요가 없다. 주체 못할 단타매매 기질이 있는가. 집 살 생각을 접는 게 좋다.

투기성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집에 잠길 비용을 100만 원 단위까지 촘촘히 추정하라. 집 살 때는 취득세, 중개 수수료, 대출비용 등을 포함해 전체 집값의 2% 정도가 든다. 5억 원짜리 집을 사는 즉시 1000만 원이 내 통장에서 쑥 빠져나가는 셈이다.

또 집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재산세를 내야 한다. 보통 연간 수십만 원이다. 집 수리비와 화재보험료도 주택보유에 드는 비용이다. 집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는 감가상각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이렇게 집을 단순히 보유하는 데 드는 비용은 집값의 0.3% 안팎. 5억 원짜리 집을 사면 연간 150만 원이 든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다음엔 기회의 크기를 재볼 차례다. 주택투자의 가장 큰 매력은 집세다. 집값의 2∼3% 정도인데 주식의 배당률(주가시세 대비 배당금 비율)과 비교하면 크게 높다. 매매가 5억 원인 A아파트를 산 뒤 전세금으로 3억 원을 받아 금융회사에 맡기면 연간 1000만 원 정도의 이자를 받는다. 주식에 비유하면 세를 놓아 얻는 이익을 집값으로 나눈 시가배당률이 2%(1000만 원÷5억 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에선 상상하기 힘든 배당률이다. 삼성전자는 배당을 하면 보통 주당 5000원을 주주에게 나눠준다. 9월 말 기준 삼성전자 주가가 130만 원을 넘어섰으니 시가배당률은 고작 0.4%. A아파트를 세놓아 얻는 시가배당률이 삼성전자 시가배당률의 5배(2%÷0.4%)에 이른다.

중개업자를 내 편으로 만들자

집 사는 것이 좋은 투자 기회인 것은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에 상품을 살 수 있어서다. 중개업소는 가격이 싸고 집주인이 팔 의사가 높은 알짜 매물을 단골고객에게만 연락한다.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흩어져 있는 만큼 정보력에서 한 발 앞서면 시장을 이끌 수 있고, 뒤지면 시장에 끌려 다닌다. 복비를 더 얹어주고라도 중개업자를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부지런하고 정보에 밝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면 배우자나 주변 사람의 도움을 구하라.

집을 사면 집주인이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하는 압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내 집에서 사는 기쁨이 집값이 5% 정도 빠져도 감수할 수 있는 정도라면 그 5%가 압박에서 해방되는 가치다. 여러분이 느끼는 해방의 가치는 5%보다 높은가, 낮은가.

무주택-실수요자에게 큰 기회

집 투자에 따라올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할 자신이 있고 기회의 크기가 위험을 감수할 만한 정도로 크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집 장만 로드맵’을 실행에 옮기라. 정부 정책을 보면 무주택자에게 큰 기회가 열려 있다. 또 부동산 거품이 일었던 2006년 전후, 투자용으로 산 집 때문에 손실을 본 사람도 실수요용 집으로 갈아탈 기회다. 대단지 내 작은 크기 아파트를 추천한다. 초기 자금이 적게 드는 데다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임차 수요가 많다.

매매차익을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큰 집이 유리하다. 일부 부자들은 경제가 회복되면 고소득층이 대형 주거지를 찾을 것으로 보고 큰 빌라 지을 땅을 사고 있다. 일반인이 이걸 따라하는 건 위험하다. 우리 사회에 ‘투자’와 ‘투기’를 나누는 공식잣대는 없다. 지금 정부는 경기부양이 절실해 투기에 잠시 눈 감은 상태다. 하지만 다시 투기꾼 색출에 나설 명분은 많다. 과거 투기대책을 만든 당국자의 상당수가 현재 부동산 부양대책반에 속해 있는 상황의 행간을 읽어라.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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