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성당 건너편에 있는 남대문세무서 건물(나라키움 저동빌딩)은 국유지 위탁개발사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곳에는 1926년 지어진 3층짜리 허름한 세무서 건물이 2006년까지 있었고 200명 남짓한 세무서 직원들이 4297m²의 금싸라기 땅을 독차지했다. 용적률 57%로 허용 용적률 600%의 9.5%만 사용했다. 민간인 땅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수십 년간 계속된 것이다.
지금은 지하 4층, 지상 15층의 현대식 건물로 거듭나 연 50억 원의 임대료 수입을 올리고 있다. 재건축의 계기는 2005년 감사원의 ‘국유재산 관리실태’ 발표였다. 당시 전윤철 감사원장은 “장기간 방치된 유휴 국유지가 서울시 면적의 2.2배나 된다”며 구체적인 사례로 이곳을 지목했다. 이곳 등 9군데 국유지가 자산관리공사에 위탁돼 개발됐다. 16명의 역대 감사원장 중 유일하게 경제관료 출신인 전윤철 씨의 작품이다.
감사원장 자리는 초기에 군인 출신이 앉았고, 민주화 이후에는 법조인이 주류였다. 사정기관으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감사원 업무에서 ‘국민의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는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재정 효율성을 가장 잘 끌어올릴 수 있는 기관 또한 감사원이라는 것이다.
올해 중앙정부의 총지출 규모가 349조 원이고 각종 기금 운영 규모는 497조 원이다. 이를 편성하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직원이 150명이다. 예산실은 매년 6∼8월 3개월간 거의 매일 야근을 하며 예산을 짜고, 12월 말 예산안 통과까지 국회심의 준비로 시간을 보낸다. 연초 인사가 있으면 3∼5월까지 새 업무를 익힌다. 순환보직 인사로 1, 2년 후에는 담당 업무가 바뀐다. 예산실 바깥 조직과, 혹은 기재부 바깥 조직과의 인사교류도 잦다. 이래서는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정부세종청사 사무실에 찾아온 각 부처 예산담당자의 설명을 들어보고 그럴듯하면 예산을 배정하는 것이다.
반면 결산감사를 하는 감사원은 인력만도 1050명으로 예산실의 7배다. 예산실과 달리 1년 내내 감사하며 필요하면 언제든 현장감사에 나선다. 감사원 내에서 인사가 이뤄지므로 전문성이 깊다. 수박 겉핥기 식 국정감사, 제 식구 감싸기 식 내부감사, 권한 없는 시민단체 감시에 비해 예산이 어떻게 쓰였는지 가장 잘 아는 기관이다.
고령화, 복지 확대 등으로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된다. 135조 원의 공약재원 조달이 국가적 과제다. 불요불급하고 효율성 낮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지자체 공기업 정부산하기관의 운영도 개혁해야 한다. 감사원이 ‘위규(違規)감사+정책감사’를 통해 정부 시스템 개혁과 재정 효율성 증대의 기관차 역할을 해야 한다.
감사원장 자리가 비어 있다. ‘국정철학을 공유한 인사’가 유력하다는 말이 흘러 다닌다. 절대 안 된다. 감사에 국정철학이 반영되면 정권에 따라 결과가 춤을 추는 ‘4대강 감사’ 꼴이 난다. 미운털 박힌 사람을 겨냥한 표적감사도 횡행한다. 정치감사다. 감사원장 직에 임기가 있는 것은 정권과 무관하게 일하라는 취지 아닌가. 물론 정책감사의 명목으로 ‘외곽에서 권력을 지원하는 감사’를 해서도 안 된다.
현재 일본과 독일 등은 법조통이 감사원장이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에서는 정책 경영 회계 쪽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미국 감사원 직원들은 스스로 ‘정부 시스템 개혁 컨설턴트’라고 한다. 감사원의 조직문화를 바꾸고 제도 개혁, 정부경쟁력 제고 감사를 정착시키려면 감사원장 자리에도 경영 마인드가 강한 인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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