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생몰(生沒) 연대를 옮겨 적으며 무심히 나이를 계산하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 63세에 돌아가셨어? 인사동에서 우연히 몇 차례 뵈었던 모습을 떠올리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틀림없다. 서른 안팎 사람의 눈에는 예순 안팎 사람이 한참 노인으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선생님은 십년 세월은 더 지나간 모습으로 기억된다. 가슴이 시리다. 선생님의 창창하게 젊은 시절을 짓밟은 모진 시대, 그 뒤에 만신창이가 된 선생님의 삶…. 그래도 천진하고 선한 성품을 잃지 않으셨다. 사회인으로 세상 안에 계실 곳은 없었지만 보석 같은 시를 계속 쓰셨다. 들국화, 나이 들어서도 애기 들국화 같았던 시인.
들국화 꽃은 가을에 피어나 가을에 진다. 그래도 들국화 꽃은 봄도 모르고 여름도 모르는 저를 슬퍼하지 않는다. ‘가을은/다시 올 테지’ 고개를 갸웃이 기울인 들국화의 애잔한 속내가 들리는 듯하다. 져가는 들국화의 가녀린 모습에 시인의 모습이 겹친다. ‘다시 올까?/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지금처럼/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 내가 내년 가을에도 살아 들국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니, 내 마음이 이렇게 순하게 살아나는 순간이 또 올까? 고마워라, 들국화! 시인의 지순하고 맑은 마음과 만나 들국화, 이렇듯 향기로운 시로 자취를 남겼네. 이 시를 기약 없는 이별을 애달파 하는, 들국화 같은 연인의 짧은 조우로 읽어도 좋겠다. 이제 들국화를 보면 천상병 선생님 생각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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