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류현진(26)이었다. 한 번은 ‘쫄았지만’ 두 번은 아니었다. 류현진은 15일 세인트루이스와의 메이저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에서 의젓하고 침착했다. 완벽했다. 7일 디비전시리즈 애틀랜타전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그날은 너무 쫄았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잇달아 저질렀다.
입스(YIPS)라는 게 있다. 어느 날 잘나가던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갑자기 굳어버린 데서 유래됐다. 보통 땐 괜찮은데 연주만 하려고 하면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도대체 왜 이럴까. 골프의 ‘퍼팅 입스’도 그렇다. 프로골퍼가 50cm 앞의 홀을 자꾸 놓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유명 골퍼 중엔 ‘이 망할 놈의 퍼팅 입스 때문에’ 꿈을 접은 사람도 있다.
야구에선 흔히 ‘스티브 블래스 병(病)’이라고 부른다. 스티브 블래스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투수였다. 1968년(18승)부터 1972년(19승)까지 연속 두 자리 승수(8년 통산 100승)를 기록한 대단한 투수였다. 그러던 그가 1973년 시즌(3승 9패, 평균자책 9.85)부터 헤매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다음 해 한 경기에서 5이닝 동안 볼넷 7개를 내주며 8실점한 뒤 옷을 벗었다.
척 노블락이라는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2루수도 그렇다. 1991년 미네소타에서 데뷔한 그는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으뜸 2루수’였다. 뉴욕 양키스가 1998년 큰 돈을 들여 그를 모셔갔다. 하지만 그는 2000시즌부터 평범한 땅볼도 더그아웃이나 관중석으로 던져댔다. 결국 2002년 그라운드를 떠났다.
군대 제식훈련 때 발과 손이 동시에 올라가는 병사가 꼭 한두 명은 있다. 요즘말로 대책 없는 ‘구멍병사’다. 교관이 지적하면 할수록 더 엉망이 된다. 왼팔과 왼발이 동시에 올라가고, 오른팔과 오른발이 또 두둥! 올라간다. 완전 ‘멘붕’이다.
요즘 한국프로야구 ‘가을잔치’가 한창이다. 생각보다 재미가 덜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예년에 꽉 찼던 관중석도 빈자리가 보인다. 어이없는 에러가 속출한다. 투수의 1루 견제구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내야의 높이 뜬 공을 서로 잡으려다 놓친다.
에러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영감은 할멈 치고, 할멈은 아 치고, 아는 개 치고, 개는 꼬리 치고, 꼬리는 마당 치고, 마당 웃전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고…. 에라, 이게 프로냐. 끓다 못해 부아가 치민다.
해설자들은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고 훈수한다. ‘게임을 즐겨야 한다’고 깐죽댄다. 어휴, 얄밉다. 누가 그걸 몰라서 못하나. 더 잘해야겠다는 욕구는 오버를 부른다. 이겨야겠다는 집착은 과욕을 낳는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감은 몸을 통나무처럼 굳게 한다.
대선수들은 큰 경기에 앞서 마음부터 다스린다. ‘아무 생각 없이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경지’ 즉 ‘무의식 본능’으로 플레이를 펼친다. 그 몸짓은 정말 아름답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무아지경’ ‘완전몰입’엔 더이상 ‘허튼 생각’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반쪽 선수들은 ‘몸의 근육’만으로 운동을 한다. 그러다 생각이 많아지면 덜컥 탈이 난다. 수십 년 동안 아무 일없이 잘해오던 플레이가 어느 한순간 ‘낯설고, 두려워’진다. 돌연 엉뚱한 몸짓이 나온다. 급기야 공황상태에까지 이른다.
그렇다. 이 세상 모든 숨탄것들은 흔들린다. 흔들리니까 생명이다. 하지만 강호의 삶은 흔들리면 진다. 덜 흔들린 자가 이긴다. 아이러니다. 마음공부가 별건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면 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쫄지 마라. 몸뚱어리는 기억하고 있다. 근육에 새겨진 무의식 본능을 믿어라. 몸은 쇠도장이다.
“일단 톱니바퀴가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투구 폼은 완벽한데 제구력 난조를 보이는 투수도 있잖아. 그런가 하면 아무렇게나 던져도 훌륭하게 코너에 꽂는 투수도 있고…야구를 한 게 20년은 거뜬히 넘었을 거 아냐? 머리는 한순간 잊는다 해도 몸은 확실히 기억하니까 걱정마라. 너는 머리가 앞서서 몸 움직임을 가로막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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