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APEC서 보여준 ‘시진핑 외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6일 03시 00분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후 처음으로 6∼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가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고 너무 뜨겁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는 자신의 기질과 특징을 잘 드러냈다.

중국 지도자들은 선거라는 치열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발탁된다. 때문에 기자들의 카메라를 독차지하고 세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데 익숙하지 않다. 더욱이 덩샤오핑(鄧小平) 사후 지도자들은 외교 무대에서 개인적 감정과 생각을 나타내길 꺼려 왔다. 그러나 시 주석은 달랐다. 자연스러운 매너가 몸에 익어 있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도 능했다.

그는 발리에서 아태지역의 3가지 ‘불변’을 제시했다. 첫째는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및 발전을 추구하는 공통 염원, 둘째는 세계 정치경제 판도에서 지위와 역할 상승이라는 역사적 추세, 셋째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이끄는 동력과 잠재력이다.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도처에서 늘어놓은 ‘중국 위협론’과 비교해 큰 포용력과 여유를 과시한 것이다.

미국이 채택한 ‘아태 재균형 전략(회귀 전략)’은 중국에 전략적 압박을 주고 있다. 미국은 최근 아베 정부에 대해 집단 자위권을 허용했고, 일본 호주와 함께 동중국해 관련 성명을 발표했으며,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9월 말 한국 방문 때 미사일방어시스템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APEC에서 재균형 전략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시 주석이 중국의 안보 문제에서 실용적이면서 몸을 낮추는 자세로 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체제가 중국에 시비를 걸든 말든 중국은 자국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이 이번 APEC 정상회의를 전후해 꺼내 든 ‘안보’ 카드에 맞서 ‘경제’를 꺼내 들었다. 시 주석은 우선 중국 경제 낙관론을 강조했다. 성장률은 완만해졌지만 발전의 질이 높아졌고 내부 동력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경제 개혁에 대한 중국의 결심을 전했다. 그는 “개혁은 반드시 끝을 봐야 한다. 주저주저하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그전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 개혁에 대해서는 “중국은 대국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 절대로 (국가를) 전복할 수 있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첫째는 중국은 계속해서 개혁을 추진하겠지만 그 절차와 목표는 ‘중국화’이지 ‘서방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둘째는 중국의 개혁이 국내의 정치·사회적 안정과 현재의 정치 질서를 대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 주석은 이번에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도 비판했다. 그는 세계화로 인해 각 경제 단위가 운명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거시 정책에서 협력을 확대해야지 서로 밟고 적대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올해 들어 시 주석은 국제사회에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중국은 항상 개방과 포용, 협력을 통해 국가와 지역, 세계경제의 균형 발전이 이뤄지길 원한다는 것이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미 간 전략적 경쟁이 한층 심화되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경제 개혁에 몰두하면서 미국의 아태 재균형 공세도 지켜만 볼 뿐이다. 굴기(굴起)를 위해 자기 카드에만 집중하는 전략적 책략을 선택한 것이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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