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온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수입차 업계의 담합에 관한 질문을 받고 “우리는 자동차 사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변만 하고 3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떠났다. 한성자동차 관계자를 불러야 하는데 다른 계열사 사장을 불러와 생긴 일이다. 역시 증인으로 출석한 허인철 이마트 대표는 기업형 슈퍼마켓 사업을 하는 이마트에브리데이에 대한 질의를 받자 “다른 회사 일이라 제가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발끈한 의원들은 그 자리에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삼성전자의 권오현 부회장, 신종균 사장, 백남육 부사장과 박상범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등 삼성전자 관련 기업인 4명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 증인으로 함께 채택됐다. 국회의원들 스스로도 한 회사에서 너무 여러 명을 불렀다고 느꼈는지 백 부사장이 상황을 설명하고 향후 종합감사 때 권 부회장을 부르는 것으로 조정했다.
국회의원들이 증인을 불러 놓고는 질문은 하지 않고 호통을 치는 것으로 끝내는 구태도 여전했다. 기업인들의 답변 시간은 1인당 1분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국정감사에 출석했던 민간 기업인 26명 가운데 한마디라도 질문을 받은 사람은 14명뿐이다. 한 국회의원은 증인에게 “이런 데 증인으로 나와서 회사를 바르게 홍보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인이 국정감사장을 회사 홍보하는 자리로 이용하면 의원들이 가만히 듣고 있겠단 말인가.
올해 국감에는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이 196명으로 작년(164명)보다 32명 많고 재작년(80명)에 비해서는 2.5배 규모다. 15일에도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 최주식 LG유플러스 부사장, 박기홍 포스코 사장, 김충호 현대자동차 대표 등 40여 명이 불려나왔다. 올해 국감의 주제가 경제민주화,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갑을 횡포 논란, 4대강 사업 등 기업과 관련된 것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국감을 기회로 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들을 대거 불러 호통 치면서 갑(甲)의 위상을 확실히 알려주려는 의도가 짙다. 업계의 갑을 관행을 문제 삼으면서 의원들 스스로 ‘갑질’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감사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1년 동안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했는지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다. 국감 직전에 여야 모두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풀어가는 국감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말뿐이었다. 국회가 달라지지 않으면 ‘국감 무용론’ ‘국감 해악론’이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