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화천 산천어, 수달, 이외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춘천서 옮겨와 8년 만에 화천 명물된 유명작가
시 그림 글씨 음악 다재다능… 자유분방 행위극 같은 젊은 시절
‘‘종북좌빨’ 비방 억울… 3代군필 안보지킴이 가족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강원 화천군의 정갑철 군수가 춘천에 40년 동안 눌러살던 작가 이외수 씨를 끌어온 것은 8년 전이다. 작년에는 화천군 다목리 문학공원에 번듯한 이외수 문학관이 들어섰다. 문학관으로 오르는 길에는 그의 시와 그림이 새겨진 자연석이 임립(林立)해 있다. 한곳에 모여 있긴 하지만 이 씨는 세계에서 생전에 시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시인이 됐다.

화천은 대표적인 안보관광지다. 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해 건설한 평화의 댐은 ‘전두환의 사기극’으로 전락했다가 북한 임남댐의 붕괴 징후가 포착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댐을 더 높여 보강했다. 전쟁터의 탄피를 녹여 만든 평화의 종 옆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아웅산 수지 같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의 동판 사진과 그들의 손을 프린팅해 만든 구리손이 관광객들에게 악수를 청한다. 김 전 대통령의 동판은 몇 차례 훼손을 당해 세 번이나 보수를 했다.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다.

이 작가는 화천군과 함께 평화의 종 공원에서 평화안보 백일장을 올해 2회째 개최했다. 6·25 참전국 대사와 가족들도 참가했다. 대한민국 젊은이의 70%가 군대생활이나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로 거쳐 가는 화천에서 젊은이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행사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화천은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DMZ 평화공원에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였다.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종종 진보적 발언을 하고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바람에 인터넷에서 ‘종북좌빨’(종북좌파를 조롱하는 말)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는 고객맞춤형 강연인 듯 동아일보 논설위원들 앞에서 자신이 종북좌빨이 아닌 이유를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를 네 번 옮겨 다니며 화천에서도 잠시 초등학교를 다닌 인연이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1968년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이 청와대를 치러 내려오는 바람에 군복무 기간이 늘어나 그는 꼬박 34개월 15일 동안 군대생활을 했다. 두 아들도 군복무를 마쳤다. 그는 3대(代)가 북한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집안인데 종북좌빨이라는 조롱을 듣는 것이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그가 북한을 진짜 싫어하는 이유는 그곳엔 진정한 예술이 없고 체제를 찬양하는 예술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예술이 신앙인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초대전만 다섯 차례 가졌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 라면 먹던 나무젓가락으로 글씨를 쓴 목저체는 일가를 이루었다. 문학관에 흐르는 음악도 전부 그가 작곡한 것들이다.

이외수 문학관 건립에 7년 동안 국비와 지방비 70억 원을 썼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진보 취향을 싫어하는 쪽에서 비난이 빗발쳤다. 수백억 원을 들여 비엔날레나 일회성 박람회를 주최하는 지자체도 많은데 문학공원 조성에 70억 원 썼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영논리로 찢겨 있음을 보여준다. 이 씨를 화천으로 데려온 정갑철 군수는 뼛속까지 새누리당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

화천군은 트위터 팔로어 100만 명을 넘긴 이외수의 마케팅 파워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해발 700m 고지에서 키운 배추가 팔리지 않아 다목리 이장이 애를 태우자 작가가 트위터에 올리면서 1만 포기가 완판됐다. 올해 화천군 산천어 축제에는 관광객 140만 명이 다녀갔다. 화천 얼음판 위에 매일 한여름 대천해수욕장만큼 인파가 몰리는 셈이다. 작가는 산천어 축제의 홍보대사다.

작가는 최근 법정에서 혼외자(婚外子)를 인정하고 합의했다. 인터넷에서 한때 시끌벅적하더니만 채동욱 혼외자 소동에 묻혀 버렸다. 자유분방한 행위극으로 이어지는 이외수의 젊은 시절 삶 속에는 속인(俗人)의 상식을 뛰어넘는 퍼포먼스가 잦았다.

그는 문학공원이 들어선 일대를 ‘감성(感性)마을’이라고 작명했다. 이성의 시대가 가고 감성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그의 진단이다. 감성마을 계곡에는 수달 가족 4마리가 산다. 작가가 산천어 500마리를 풀어놓았는데 수달이 족족 잡아먹고 지금은 50마리 정도 남아 있다. 수달과 산천어와 이외수가 사는 화천 감성마을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화천에서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이외수#화천#안보#북한#종북좌빨#진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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