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세계질서는 미국이 홀로 우뚝 선 단극(單極·unipolar)질서일까, 미국과 중국이 양립하는 양극(兩極·bipolar)질서일까. 아니면 다수의 강대국이 난립하는 다극(多極·multipolar)질서일까? 그런 세상에서 한국처럼 지역 내 상대적 약소국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는 국가전략은 무엇인가?
실로 중국의 부상이 확연해진 지난 10여 년간 한국 외교의 고민은 바로 그것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가 바로 그런 고민을 반영한다. 그 이면에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양극질서가 대두하고 있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다.
국제정치학계도 바로 그 문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경제가 아무리 커졌더라도 인구에 의해 부풀려졌을 뿐, 군사력과 기술력 등 총체적 국력에서 미국을 따라오려면 멀었다는 입장과, 그 격차가 급속히 좁혀지고 있어서 이미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이 됐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그런데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그 극(極·pole)의 의미이다. 흔히 극(極)국가란 고만고만한 국가들 사이에 장대처럼 우뚝 선 나라, 즉 강대국 또는 초강대국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극에는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극의 또 다른 용례는 바로 북극(北極)과 남극(南極)이다. 북극과 남극은 끌어당기는 자력이 가장 강한 자극(磁極)이다. 마찬가지로 국제정치에서 극이란 다른 나라들을 끌어당기는 중심 국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양극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으로의 양극화를 의미했듯, 극화란 곧 진영화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향후 세계질서는 단극도, 양극도 아닌 무극(無極)질서가 될 것이다.
첫째, 세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계는 냉전 초기와 같은 군사적 대결 상태가 아니어서 군소 국가들이 생존을 위해 어느 강대국에 매달려야 하는 절박함이 덜하다. 그러다보니 군사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경제, 사회문화, 환경 등 온갖 이슈가 국가이익의 주요 내용이 되었다. 한 분야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포괄적인 동맹관계의 매력은 그만큼 감소했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자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력이란 곧 영향력 또는 권력인데, 미국의 자력은 생각보다 빨리 쇠퇴하고 중국의 자력은 생각보다 느리게 성장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한 진영화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권력자의 오만, 곧 휴브리스 때문이다.
단극시대의 권력에 취한 듯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은 유엔과 동맹국을 무시하는 오만한 외교로 여러 나라를 실망시켰다. 최근 연방정부 폐쇄에서 봤듯 미국은 아직도 오만하다. 반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최와 세계 금융위기로 급속히 세계의 주목을 받은 중국은 벌써 오만하다. 노벨평화상을 이유로 노르웨이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영토분쟁으로 주변국을 겁박했다.
그러나 수중에 쥔 권력에 취해 있는 사이 남의 심중에 있는 매력이 달아나는 것이 권력 현상의 오묘함이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의 상대적 국력을 둘러싼 논쟁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국과 중국은 극으로서의 자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 같은 무극시대의 행동지침은 무엇인가? 극 국가의 역할이 붐비는 관광지에서 깃발을 들고 이끄는 가이드와 같다면 무극시대란 곧 혼자 여행하는 것과 같다. 나 홀로 관광객은 관광 요점과 지리를 숙지하고 움직이되 전체적인 방향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빈 공간을 찾아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고 필요하다면 남들을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한다.
국가의 체력이란 곧 경제력과 군사력이다. 기민한 움직임이란 곧 외교력이다. 그리고 방향을 잡고 빈 공간을 찾는 것은 정보력이다. 체력을 보강하고, 외교력을 다듬고 정보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경제는 아직도 어렵고 국방개혁은 표류하고 있으며 외교는 현안 관리에 급급하다. 그 위에 국가정보원은 치열한 정치투쟁의 대상이 됐다. 붐비는 관광지에서 홀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치이는 관광객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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