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담금질로 여기저기 닳고, 옹이가 박힌 해묵은 나무판. 그 위에 검정 뿔테 안경을 쓴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정겨운 시선으로 참새를 바라보고 있다. 폐목의 자연스러운 결과 색을 그대로 살려 고인의 모습을 단청기법으로 재현한 중견화가 김덕용 씨의 ‘지음(知音)-박경리’란 작품이다. 이 세상에 하찮은 목숨이란 없다며,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던 고인의 절절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올곧은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존경받는 어른이었던 그가 떠난 지 어느 덧 다섯 해를 헤아린다. 그가 54세 때 정착해 말년을 보낸 강원도 원주. 이 도시의 가을에는 문학의 짙은 향기가 대기 중에 흐른다. 해마다 10월이면 외동딸 김영주 씨가 이끄는 토지문화재단 주관으로 박경리 문학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올해도 청소년백일장, 박경리문장낭독대회, 음악회, 그리고 박경리문학상 시상식까지 그의 문학적 업적과 생명사상을 기리는 추모행사들이 29일까지 빼곡히 이어지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는 원래 시인지망생이었다. 19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등단했던 그가 제일 처음 동리에게 가져간 원고도 습작시였다. 스승의 권유를 받아 소설로 방향을 틀긴 했으나 데뷔 이후에도 틈틈이 시를 썼다. 1969년 ‘토지’의 집필을 시작한 뒤 1994년 대미를 장식하기까지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원고지 4만 장을 채워야 했던 지난한 여정. 삶의 터를 원주로 옮긴 뒤 고추밭 배추밭에 물 주고 닭 모이 주고 개밥 주고, 주인 없는 고양이들까지 일일이 챙겨 먹이느라 정작 자신의 식사는 대충 때워야 했던 분주한 일상. 그 곤고한 삶에서 길어 올린 시들로 5권의 시집도 펴냈다.
그가 남긴 작품 중 ‘대추와 꿀벌’은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돌아보게 한다. 단맛에 이끌려 질식한 꿀벌의 종말. 그 위로 황금과 행복이라는 신기루 같은 욕망을 향해 채울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슬프도록 어리석은 말로가 포개진다. 이미 넘치도록 누리는 것은 돌아볼 생각조차 없이, 결핍에만 신경을 몰두하고 내 몫 더 차지하겠다며 자진해서 스스로를 탕진하는 사람들. 이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모르는 우리는 평생 영혼의 허기와 씨름할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원주 토지문화관에 갔을 때 고인이 육필원고로 남긴 시 ‘우리들의 시간’을 만났다. 인생을 똑바로 살라고 죽비처럼 내리치는 작품이다. ‘목에 힘주다 보면/문틀에 머리 부딛쳐 혹이 생긴다/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혹 생긴 연유를 모르고/인생을 깨닫지 못한다/낮추어도 낮추어도/우리는 죄가 많다/뽐내어본들 도로무익(徒勞無益)/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