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외 노조’와 총력 투쟁은 전교조의 갈 길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전교조가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내부 규약을 수정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수용할지를 놓고 총투표를 실시한 결과 조합원의 68.59%(투표율 80.96%)가 ‘수정 거부’를 택했다. 전교조가 23일까지 규약을 개정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는 전교조에 ‘법외 노조’를 통보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전교조는 합법화한 지 14년 만에 다시 법 밖으로 나가게 된다.

전교조가 합법적 지위를 상실하면 교육부나 시도교육청과의 단체 협약이 해지되고 사무실 지원금이 끊어진다. 전교조의 노조 전임자 76명은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조합원 월급에서 조합비를 원천 징수할 수 없으므로 노조 활동도 크게 위축될 것이다. 전교조가 법외 노조 상태에서 총력 투쟁에 몰두할 경우 학교 현장의 혼란과 갈등이 확산될 우려도 크다.

전교조는 박근혜 정부가 공안 정국을 조성하며 자신들을 탄압한다고 주장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교원노조법은 ‘현직 교사만 조합원이 될 자격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처럼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누구보다도 법을 잘 지켜야 할 위치에 있음에도 법치를 거부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교원노조법의 관련 조항이 논란의 소지가 있고 국제기구의 권고나 세계 추세와 안 맞는다면 전교조는 먼저 법을 지킨 뒤 국회를 상대로 법 개정에 힘을 쏟는 것이 옳다.

해직자 문제로 전교조가 법외 노조를 선택한 배경에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해직자가 탈퇴하면 노조 근무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보다 유연한 대응으로 법외 노조가 되지 않을 수가 있는데도 규약 수정을 거부한 것은 해직자의 생계 문제가 아니라 ‘명분 싸움’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합원 이탈로 위축되고 있는 전교조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결집력을 강화하고 존재감을 키우려는 의도가 아닌지 모르겠다.

앞으로 전교조는 교육 문제가 아닌 사회 현안에 더욱 깊이 개입하고 투쟁 방식도 강경해질 공산이 크다. 그럴수록 조합원 이탈과 국민의 외면으로 고립만 자초할 것이다. 국민은 지금 전교조가 참교육으로 기치를 올렸던 초기의 전교조가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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