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시인이며 문인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자하 신위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기리는 만시(挽詩)를 여러 편 남겼다. 만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지은 시를 말한다.
시 중에서 ‘눈물을 참는 것이야 이젠 어렵지 않소만 … 가슴속이 청매실이라도 들어있는 듯 이상하게 오래도록 시큰해져 오는구려’라는 구절은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이 가슴 저리도록 슬픈 일임을 절감하게 한다.
프랑스 출신의 화가 제임스 티소의 그림에서도 만시를 음미하는 듯한 슬픔이 느껴진다.
젊은 미녀가 단풍으로 물든 공원을 걸어가다가 뒤돌아보는 장면이다. 10월의 여인은 화가의 연인이며 모델인 캐슬린 뉴턴이다. 티소에게 뉴턴은 인생의 연인, 창작혼을 자극하는 뮤즈였지만 영국 사회는 두 사람의 관계를 용납하지 않았다. 티소는 미혼의 유명 화가였지만 뉴턴은 사생아가 둘이나 있는 이혼녀였기 때문이다.
티소는 부도덕한 커플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뉴턴이 1882년 28세로 결핵에 걸려 사망할 때까지 동거하면서 그녀가 모델인 많은 인물화를 그렸다. 심지어 연인의 죽음도 화가의 열정을 잠재우지 못했다. 티소는 심령술에 빠져 뉴턴의 혼을 부르는 초혼의식을 치른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의 애끓는 심정을 보여주는 구절이 있다.
‘나오코의 죽음은 내게 이런 것을 가르쳐 주었다. 어떠한 진리도, 성실함도, 강함도,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마음껏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오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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