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은 적고 생산성 있는 대안도 별로 없이 증인에 대한 호통과 면박이 난무한다. 올해 국정감사 피감기관이 630곳에 달해 역대 최대 기록이라는데 16개 상임위원회가 20일(실제로는 주말 빼고 보름 남짓) 동안 258명의 민간인 증인까지 감사한단다. 어떤 사기업은 국정감사를 피하려 문제를 알아서 시정하기도 하지만 피감기관과 증인은 대체로 국정감사 받는 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국정감사라는 제도는 한국에서 1949년에 처음 실시됐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국정감사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1953년 국정감사법이 제정된 뒤에도 감사를 회피하거나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상임위원회나 임시국회 활동이 적어 국회가 아주 최소한으로만 작동되던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국정감사는 그나마 행정부가 야당이나 입법부의 견제를 허용하여 한국이 민주적이라고 보여주려는 과시용 통과의례와 같았다. 하지만 유신 이후에는 그마저 사라졌다.
1988년 부활된 뒤 첫 국정감사는 정말 대단했다. 꼭꼭 숨겨졌던 국정현안과 관련된 자료 및 정보가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레이더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일해재단이나 새마을운동중앙본부 등 전두환 일가의 비리나 삼청교육대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조작사건, 김근태 고문사건 등은 물론 수많은 제5공화국 비리가 파헤쳐졌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변했다. 과거와 천양지차로 행정정보는 거의 여과없이 공개되고, 언론은 성역 없이 알리고, 인터넷과 SNS는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국회는 1년 365일 거의 빠짐없이 열리고 휴회 중이라도 상임위원회는 의무적으로 매달 두 번씩은 회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국정감사는 가을에 한꺼번에 이루어지고 ‘동양 사태’와 같이 뒷북을 치거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같이 재탕을 하거나 한건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그마저 국회는 증인채택과 관련하여 밀고 당기기에 시간을 허비하고 증인이 선서를 안 하고 위증은 물론 알맹이 없이 답변해도 허수아비에 그친다.
지난해 시대착오적 국정감사제도를 개선하고자 여야가 합의했다. 올해부터는 국정감사를 9월 1일 정기국회를 시작하기 전 30일 동안 하기로 말이다. 국회가 일 더하자는 것인데 실제로는 여야가 싸우면서 정해진 시간에 결산은 커녕 국정감사까지 오히려 더 뒤로 미뤄졌다. 이번에는 상시 국정감사제를 도입하자는 법률안도 재등장했다. 과거에도 상시 국정감사제를 도입하자는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사장되었다. 국정감사를 1년 12달 내내 하면 피감기관은 본업을 하나도 못하고 국회 실무진도 파김치가 될 거라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에서 국정감사가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게 이미 오래전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이나 민주화 초기 행정정보가 숨겨지고 언론이 약했을 때 국정감사는 그나마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지금은 상임위원회 활동이 활발하고 국회가 매일 열려 있는 마당에 벼락치기 시험 준비 하듯 9월 정기국회까지 기다려 국정현안을 한꺼번에 모두 다룰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국정감사는 상임위원회에서 중요한 현안이 제기될 때 시의적절하게 청문회를 열어서 대체하면 된다. 현행 국회법 제65조에는 이미 상임위원회마다 청문회를 통해서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수준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제 새로 청문회제도가 제자리를 잡게 되면 국회는 상임위원회별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적시에 속도감 있게 국정현안을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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