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2013회계연도 상반기(4∼9월) 무역수지가 4조9892억 엔(약 55조66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반기(半期)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다. 9월 무역적자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9321억 엔으로 집계돼 15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졌다. 1979∼1980년의 제2차 석유쇼크 당시 14개월 연속 무역적자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일본은 엔화 가치 약세 등에 힘입어 올해 4∼9월 수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9.8% 늘었지만 수입은 13.9% 증가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화력발전소용 연료인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수입액이 크게 늘었다. 최근 엔화 약세는 수출 증가에는 도움이 됐지만 달러 환산 수입품 가격을 끌어올려 무역수지를 악화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수출을 통한 경제 발전에 매진하면서 거의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렸다. 그러나 대지진 이후 에너지 수입이 급증하고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2011년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뒤 올해까지 3년 연속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무역수지가 적자라도 해외 배당금이나 이자 수익 등 무역외 수지에서 대규모 흑자를 내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무역수지가 적자라면 경상수지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1990년대 중반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서면서 1997년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된 뼈아픈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의 무역수지가 올해 9월까지 20개월 연속 흑자를 올린 것은 다행이지만 무역수지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는 것은 금물이다.
한때 세계 최대의 무역흑자국이었다가 3년 연속 무역적자국으로 바뀐 일본의 사례는 원전 정책과 관련해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전의 안전성 강화는 중요하지만 경제적 비용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탈(脫)원전으로 치달으면 에너지 수입 급증과 급격한 무역수지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무역수지 관리를 함께 감안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