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KT 싹쓸이 압수수색, 이석채 회장 나가라는 뜻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3일 03시 00분


서울중앙지검이 어제 경기 성남시 분당의 KT 본사와 서울 서초동 사옥, 이석채 KT 회장과 임직원 자택 등 16곳에 수사관들을 보내 회계 장부와 하드디스크, 내부 보고서를 압수했다. 검찰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올해 2월 이 회장을 배임 행위로 검찰에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의 비리 혐의가 포착되어 정상적으로 압수수색을 한 것이라면 나무라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명박(MB) 정부 때 선임된 이 회장을 솎아내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KT는 공기업인 한국전기통신공사가 2002년 민영화되어 탄생한 회사다. 외국인 주식 지분이 49%나 되지만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MB 정부 출범 후 노무현 대통령 때 KT 사장을 지낸 남중수 씨는 자회사인 KTF의 납품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 퇴진했다. MB 정부의 출범 첫해인 2008년 이맘때쯤이다. 이듬해 남 회장 자리에 들어간 사람이 이석채 회장이다.

KT는 계열회사가 54개나 되어 사장과 감사 자리만 합해도 100개가 넘는다. MB 정부 때 임명된 권력기관 출신과 캠프 출신 인사들이 KT의 고위직에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KT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새로운 권력이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KT에 내려보내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세청이 역시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포스코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하는 것도 MB 정부 때 취임한 정준양 회장과 연결짓는 시각이 있다.

엄격히 말해 KT든 포스코든 정부 지분은 하나도 없으므로 정부는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뚜렷한 주인이 없는 두 회사를 100% 민간회사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권과 가까운 인사가 회장 자리에 앉고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계열사에 줄줄이 내려오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청와대가 KT와 포스코를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이들 회사가 검찰 수사와 국세청 조사로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지 못하고 뒤숭숭한 채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이들 회사의 회장 거취가 논란이 되는 시점에 검찰 등 권력기관이 나서는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봐야 하나.
#이석채 회장#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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