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화옹간척지에 동부그룹이 세운 유리온실이 있다. 얼마 전 이곳을 찾았을 때 15만 m²의 첨단시설에서 수만 줄기의 토마토가 자라고 있었다. 일본 시장에서 인기 높은 고급 ‘다볼’ 품종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후 이곳에서 키운 토마토 1530t 중 600t은 버려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곳의 토마토는 스펀지 모양의 인공 흙(암면 큐브·rock wool cube)에서 자란다. 중앙 통제실에서 채광량을 자동으로 조절하고 파이프로 비료를 투입한다. 예를 들어 토마토에 칼슘이 부족하면 칼슘 용액을 파이프로 공급하는 동시에 공기 중에 흡수를 돕는 이온 성분을 뿌려 준다.
첨단기술을 적용해 관리하니 생산성이 높다. 일반 비닐하우스에서 m²당 1년에 8kg을 수확하는 토마토를 이곳에선 50kg 이상 생산한다. 농업 선진국 네덜란드에서 기술을 배워와 지난해 12월 유리온실을 완공했을 때만 해도 동부그룹은 우리 농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여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일본 유통업체들의 토마토 수출 계약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기업의 진출로 불안감이 커진 농민들이 브레이크를 걸며 갈등이 시작됐다. 생산물량의 90%를 수출한다고 약속했지만 소용없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련) 등 농민단체가 전국적으로 동부 비료 불매운동을 벌이자 동부는 3월 말 사업을 포기하고 유리온실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농(農)-농 갈등이 시작됐다. 화성지역 농협 12곳, 농민단체 5곳, 영농법인 1곳이 함께 세운 화성그린팜이 유리온실을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 자금과 운영 노하우가 부족한 이들은 동부에 49% 지분 투자를 요구했다. 하지만 전국 농민단체인 전농련은 “동부 지분이 1%라도 남아있으면 불매운동을 재개하겠다”며 반발했다.
화성그린팜이 딴 곳에서 자금을 마련해 유리온실을 독자적으로 인수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전국 토마토 농가들은 대기업이 운영하든 농민단체가 운영하든 이곳의 토마토가 국내에서 팔리면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농민단체가 운영하면 국내에 유통될 확률이 더 높다. 대기업 빵집이 중견기업에 넘어갔을 때 골목 빵집의 두려움이 더 커졌던 것과 같은 사정이다.
불안해진 일본 기업들은 수입 물량을 줄였다. 7개월째 매각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내수 판매도 수출도 못한 토마토는 마당에서 푹푹 썩어갔다. 급기야 무더기로 버려졌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로 인한 갈등을 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한 농림축산식품부는 뒤늦게 ‘대기업의 농업 참여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농민 설득하기에 나섰지만 아직 별 진전은 없다.
지난달 25일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농업도 수출산업으로 키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화성 유리온실의 수출용 토마토는 대기업과 농민, 농민과 농민의 엇갈린 이해관계에 발목을 잡힌 채 여전히 버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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