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대머리 총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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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창 시절에 ‘대머리 총각’이라는 대중가요가 크게 유행했다. 아마 그 시절에는 스스럼없이 그 노래를 불러도 괜찮을 만큼 대머리 총각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진짜 대머리 총각과 결혼하여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 친구가 있다.

“그때 넌 어떻게 해서 대머리 총각과 결혼하게 되었어?”

지난번 친구들의 모임에서였다. 친한 사이였지만 그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우리 남편들의 머리숱 역시 하향 평준화되어가는 마당인지라 한 친구가 부담 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평소에 똑 부러지게 똑똑한 그 친구의 대답이 의외로 허술했다. 대머리인 줄 잘 몰랐다는 것이다.

“소개해준 언니의 말이 머리숱이 좀 적다고 하더라. 그래서 다방에 앉아 한 20분 기다리는 동안 머리숱이 적은 남자가 들어오면 ‘저 남잔가’ 하고 쳐다봤지. 그런데 막상 소개받은 남자가 내 앞에 앉았을 때는 머리카락은 안 보이고 크고 맑은 눈만 보였어.”

대여섯 명 친구들이 “에이∼” 하며 실망했는데 다른 한 친구가 정색을 했다.

“난 처녀 시절에 남자의 외모는 상관하지 않는데 얼굴에 점 있는 사람은 무척 싫어했거든. 그런데 결혼하고서 한참 지났을 때였어. 남편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는 거야. 그것도 눈썹 바로 위에 있는데 내가 그때까지 그걸 못 봤다니 기가 막혔어.”

예민하고 눈 밝은 친구의 말인지라 우린 “정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처녀 시절, 이건 좋고 저건 싫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머리숱이 조금 더 많든 적든, 얼굴에 점이 있든 없든 말이다.

사실 그날은 쉰이 넘었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우리에게 남자 친구를 선보인다고 하여 모인 자리였다. 우리는 그 남자 친구에게 예전의 철없는 잣대를 들이대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칭찬의 말 중에는 “머리숱 정말 많더라!”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나이에 친구의 결혼 상대를 만나 채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니 얼마만이냐고 감격스러워하면서, 어쨌든 늦은 나이에 연애를 시작한 친구 커플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냈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것이라는데, 이 가을에 사랑을 저울질하고 있는 연인들이 있다면 다 내려놓고 그냥 사랑에 푹 빠져볼 일이다. 그 저울질, 살아 보니 부질없었다.

윤세영 수필가
#대머리 총각#연애#사랑#저울질#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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