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를 운전해 한 대형마트를 찾았을 때다. 지하주차장에서 주차안내원은 차량이 들어올 때마다 허리를 90도로 꺾어 ‘과한’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다른 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배기가스 때문에 창문을 꼭 닫은 차량의 운전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청을 높여 알렸다. 왜 저렇게 하는 걸까. 안내판을 들고 서 있다가 누가 길을 물으면 응대하면 될 텐데….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 몸에는 불편함의 ‘전류’가 흘렀다. 그리고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에도 그런 편치 않은 감정을 느꼈던 것을 떠올렸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날씨여서 상대가 더 안쓰러웠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4월 어느 기업 임원이 라면 때문에 승무원에게 폭언, 폭행을 한 ‘기내식 라면 사건’은 ‘감정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든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런 사건의 원인은 ‘불량 고객’ 개인의 문제일까. 그렇게 보기엔 서비스 기업들의 ‘과잉 친절’이 도처에서 넘쳐나고 있다.
휴대전화 통신사에 가끔 부가서비스 사용법이나 요금 관련 사항이 궁금해 콜센터로 전화를 하고 나면 콜센터 직원의 응대 점수를 매겨달라는 문자메시지나 전화가 어김없이 온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그런 전화나 문자는 중요한 통화를 기다리고 있거나 마감시간에 쫓길 때 오는 경우가 많다. 불편한 것이 있을 때 거는 전화만 잘 받아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캐주얼 레스토랑이 성업하면서 주문을 받을 때 종업원이 무릎을 꿇고 고객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지만 그게 적절한 응대법일까. 굳이 서양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당하게 선 채로 미소를 곁들여 ‘날씨 인사’를 하면서 주문을 받는 것이 아무래도 더 세련된 방식 같다. 하루에도 수십∼수백 번 무릎을 꿇는다고 생각하면 결코 편치 않다.
친절 서비스 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한 전자회사 서비스센터를 방문해 가전제품을 고쳤을 때다. 담당 직원이 자신의 서비스에 점수를 매겨달라며 평가표를 내주더니 평가를 마치자 직접 회수하는 게 아닌가. 서로가 참 어색한 일이다.
‘서비스 기업’의 이런 과도한 친절 경쟁을 자본주의 체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적절한 서비스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나라 밖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당당한 태도로 서비스를 하는 항공사도, 친절한 미소로 응대하면서도 자부심을 잃지 않는 레스토랑 종업원도 일상의 모습 아닌가.
‘감정 노동자’를 막무가내로 대하는 사건의 직접적 원인은 분명 불량고객에게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과잉 친절을 너무 당연시하다 보니 ‘서비스’와 ‘인격’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서비스 기업들이 지나치게 친절을 강조하느라 직원들에게 심리적 반발을 일으키는 행동까지 강요하는 건 아닌지 성찰해 봤으면 한다. 친절은 서로가 편안함을 느끼는 수준, 딱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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