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세수(稅收) 펑크는 기정사실이 됐다. 5조 원이 될지, 10조 원이 될지 규모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정부는 하반기 경기가 개선돼 세수 부족 폭이 크게 줄어들길 기대했지만 희망사항에 그칠 개연성이 높아졌다. 이런 데에는 글로벌 경기침체의 탓이 크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얄팍한 경제 실력도 여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경제학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라틴어 문구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는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이라는 가정이다. 경제학자들이 수요의 법칙 등을 설명할 때 자주 쓴다. 수요와 가격의 인과관계 등을 설명하기 위해 제품의 품질 등 다른 변수들은 모두 같은 것으로 가정할 때 쓰는 이론적 장치다.
제대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세테리스 파리부스가 현실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세상에는 그 밖의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 공부를 잘못 했거나, 이런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눈을 꼭 감고 국가 경제의 향방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숫자를 계산해 내는 정치인과 정치에 눈이 팔린 경제학자들이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은 복지재원 마련 방안을 밝히면서 수십, 수백조 단위의 숫자들을 많이 내놨다. 그 연속선상에서 박근혜 정부는 올해 5월 지하경제 양성화로 5년간 27조2000억 원의 세수를 추가로 걷어 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 국세청은 요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단골 표적은 유흥주점 주인, 의사들, 주유소 사장 등이다. 한 해에 1억5000만 원씩 세금을 떼어먹는 자영업자 1만 명이 있다면 이들에게 1조5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거둬 복지에 쓸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이 깔려있다.
부당하게 챙긴 소득에 세금을 법대로 걷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다만 이 계산에는 큰 함정이 있다. 이들이 지금까지 탈세(脫稅)를 전제로 영업을 해왔다는 점이다. 1억5000만 원 세금을 떼먹는 덕에 1억 원을 집에 가져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법대로 1억5000만 원씩 세금을 거두면 이들은 매년 5000만 원 손해를 본다. 그러느니 차라리 문을 닫는다. 최근 술집 주인들이 모여 세금 부과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다 분신까지 한 일, 몇 달 만에 동네 단골병원에 갔다가 문이 닫혀 당황스러웠던 경험, 주유소들이 줄줄이 경매에 넘어가는 것 모두 이런 일과 관련이 있다.
폐업한 술집이나 병원은 세금을 안 낸다. 정치인들의 산수는 결과적으로 틀린 답이 되고 기대했던 복지재원에는 구멍이 생긴다. 지하경제 양성화뿐 아니라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에도 비슷한 계산법이 적용됐다.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한쪽 손(hand)만 있는 외팔이 경제학자는 없냐”라고 푸념한 적이 있다. 정책의 효과에 대해 매번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이렇지만,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이런 효과가 있다”며 양 측면을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에 대한 불만 섞인 농담이었다. 한국의 지난번 대선 때 여야 캠프에는 외팔이 정치인, 외팔이 경제학자들이 넘쳐 났다.
이들은 ‘세테리스 파리부스’ 대신 ‘모든 게 바라는 대로 되면’이란 가정을 바탕으로 황당한 숫자들을 만들어 냈다. 최근 여권의 고위 관계자들마저 이렇게 만들어진 숫자들의 허상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5년 내내 국민들이 이 숫자들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현실을 고려해 엉터리 산수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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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5 22:50:21
한국어의 "빨리,빨리" 는 외국에 있는 한국인의 식품점 종업원, 숯불구이집에서 화로 갈아주는 일꾼, 야채운송차량에서 짐내리는 일꾼, 이삿짐센터 일꾼 등등에게 입에 올라있는 말이다. 이 일꾼들이 모두 비 한국어권 현지인들이다. 이제는 본국 정부에서 빌려다 써야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