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서 근무하던 여군 대위가 직속상관의 성관계 요구와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숨진 오모 대위의 유서와 일기에 따르면 그는 10개월 동안 노모 소령의 성추행과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노 소령은 “하룻밤만 같이 자면 군 생활을 편하게 해 주겠다”며 끈질기게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한다. 상관의 파렴치한 욕망이 부하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오 대위는 사단본부 부관참모부에서 근무해 사단장을 비롯한 상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도 해당 부대는 장기간에 걸친 여군 장교의 피해를 파악하지 못했다. 오 대위는 부대원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고충상담관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고충은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2009년 329건이던 군내 성범죄가 2012년에는 453건으로 늘었다. 현재 여군은 8448명으로 전체 군 장교와 부사관의 4.7%에 이른다. 국방부는 2020년까지 여군 비율을 장교의 7%, 부사관의 5%까지 늘릴 계획이다. 육해공 어느 부대에서나 남자 상관과 여자 부하가 함께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다. 성범죄에 대한 군 전체의 각성을 위해서도 가해자를 엄벌하고 지휘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여성의 군 입대가 보편화한 미군이나 이스라엘 군대에서 성범죄 예방법을 배워 올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이화영 소장은 “철저한 계급사회인 군에서는 하급자가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공론화하기가 어렵다. 전출을 요청해도 이유가 알려져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며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피해자를 은밀하게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 뒤 가해자 조사를 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는 미군처럼 철저하게 ‘무(無)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벌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어제 발표한 ‘2013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의 성평등 수준은 세계 136개국 가운데 111위였다. 지금도 병영의 한쪽 구석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하는 여군이 있을지 모른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군의 성범죄는 일반사회보다 더 심각한 인권 유린이다. 강군(强軍)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군의 성범죄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