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호의 경제 프리즘]역발상 산천어축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9일 03시 00분


허승호 논설위원
허승호 논설위원
매년 1월 강원도 화천에서는 산천어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원래 화천에는 산천어가 살지 않는다. 산천어는 송어의 육봉형(陸封型), 즉 바다와 민물을 왕래하던 어류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육지 민물에 봉쇄당하는 바람에 형성된 종이다. 양양 강릉 등 영동지방에서 동해 쪽으로 흐르는 하천의 최상류, 물이 맑고 차며 산소가 풍부한 곳에 산다. 말하자면 북한강의 지류인 화천천에 엉뚱한 물고기를 풀어놓고는 얼음낚시를 하는 게 산천어축제다. 지금은 군내에서 40t, 인근 지역에서 60t씩 계약 양식해 행사 때마다 공급한다.

화천은 4차로 도로가 없는 국내 유일의 지방자치단체다. 전체 면적의 92%가 산과 물이다. 읍내엔 군 장병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먹고살 게 없다 보니 곤궁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03년 억지 축제를 시작한 것이다. 캐치프레이즈는 ‘수달과 산천어가 사는 청정 화천’. 산과 물뿐인 악조건을 ‘청정(淸淨)’으로 뒤집어 브랜드화했다.

당시 정갑철 화천군수는 준비를 독려하며 “2만 명이 오면 시장 한복판에서 춤을 추겠다”고 했다. 열 배가 넘는 22만 명이 왔다. ‘흔치 않은 겨울축제, 새해 첫 축제’로 차별화했고 여기에 매스컴이 주목한 결과였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쳐들어온 후 가장 많은 외지인이 왔다’는 농담이 나왔다. 이어 2004년에 58만 명, 2006년에 100만 명을 넘겼다. 2009년부터 “행사의 질 관리에 주력하자”며 숫자 세기를 중단했지만 대충 140만 명으로 보고 있다. 그때부터 동남아를 돌며 홍보했다. 이제 외국인도 3만 명씩 온다. 이들을 겨냥해 한 주민이 3년 전 외국인 면세점을 열었다. 강원도 유일의 면세점으로 꽤 잘된다.

겨울축제 중 내방객 100만 명 이상인 것은 캐나다 퀘벡의 겨울카니발, 중국 하얼빈의 빙등(氷燈)축제, 일본 삿포로의 눈축제 등이다. 이들은 산천어축제를 포함해 자기네 행사를 ‘4대 겨울축제’라며 홍보하고 있다. 물론 화천도 가세했다.

축제조직위는 겉으로는 ‘무료입장’을 내걸지만 각종 행사장 입구에서 돈을 받는다. 대신 그만큼의 화천사랑상품권을 내준다. 특산물을 사든, 식사를 하든, 휘발유를 넣든 자유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못 쓴다. 여기서 돈을 쓰고 가게 하려는 미끼로 화천이 축제로 인해 누리는 직접 경제효과는 연 700억 원, 간접 효과를 합하면 2000억 원에 육박한다. 반면 화천군이 행사에 쓰는 예산은 매년 20억 원, 산천어 값을 제외하면 10억 원가량이다.

읍내 상가들은 연간 매출의 3분의 1을 축제 기간인 20여 일 만에 올린다. 군민의 1인당 연소득이 2002년 2090만 원에서 2012년 1.4배인 2920만 원으로 뛰었다. 전국 평균(2280만 원·이상 2005년 기준 불변가격)을 훌쩍 넘는다.

산천어축제만으로 소득을 이렇게 늘릴 수는 없다. 화천은 평화의 댐을 앞세워 ‘청정’과 함께 ‘안보’를 관광자원화했다. 댐 옆에 1만 관(37.5t)짜리 ‘평화의 종’을 매달아 관광객들이 자유로이 치게 하고 가곡 ‘비목(碑木)’을 소재로 한 비목공원도 만들었다. 이 밖에 강을 휘감는 산책로 및 자전거도로, 이외수 작가의 문학마을, 조정 카누 빙상 축구의 스포츠마케팅 등 비(非)겨울 관광자원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많은 지자체들이 그들만의 축제, 손님 없는 리조트, 빚만 남기는 국제행사, 호화 청사, 철거 논의까지 나오는 경전철 등으로 빚더미에 앉아 있다. 단체장들이 공명심에 눈멀어 사업타당성을 정직하게 검토하지 않고 마구 내지른 결과다. 화천은 창의와 면밀한 준비에 따라 주민의 살림살이가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산천어축제#강원도 화천#지방자치단체#관광자원#청정#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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