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파워맨 ‘기춘 대원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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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은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으로 변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영일대군으로 불리며 대부(代父) 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 이명박 대통령은 형님을 정계에서 은퇴시켜 주기 바란다”며 이상득 의원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들은 벌 떼처럼 일어났다. 국회 본회의 속기록에 ‘영일대군’이라는 호칭이 공식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이 의원은 박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을 사전에 전해 듣고 본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그제 “흥선대원군 이래 최대 막후실세라는 점에서 ‘기춘 대원군’으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며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겨냥했다. 박지원 의원은 같은 날 감사원장 후보로 지명된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에게 “기춘 대원군에게서 감사원장 낙점을 통보받은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캐물어 “그렇다”는 답변을 받아내자 트위터에 이렇게 올렸다. “역쉬!”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후보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같은 경남 출신이 지명되자 김 실장의 ‘막강 파워’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말이 나온다. 김 실장은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인사위원장이니 뜬소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실장으로선 억울할지 모른다. 얼마 전 김 실장과 저녁을 함께한 그의 지인은 김 실장이 식사 시간 내내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을 보며 측은한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완장’ 차고 거드름 피우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박근혜 대통령 옆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수명 단축의 지름길일 것이다.

▷‘대군(大君)’ 칭호를 처음 받은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봉하대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는 ‘소통령’으로 불렸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박지원 의원이 소통령의 ‘작위’를 받았으니 ‘영일대군’이나 ‘기춘 대원군’을 향한 그의 꾸짖음은 한 편의 부조리극이다. 권력 2인자의 비참한 말로는 어느새 공식처럼 굳어졌다. 김 실장이 그 공식의 불변성을 다시 확인해 주지 않기를 바란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기춘 대원군#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영일대군#소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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