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 등을 히트시켜 2조 원 자산가가 된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다. 왜 온라인게임 사업을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 소프트웨어(SW)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는 게임밖에 없었다”고 답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스스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고 하는 것도 안랩을 창업해 경영하던 시절 대기업들에 가격 후려치기와 기술 탈취를 당한 경험 때문이다.
고건 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그제 미래창조과학부 강연에서 “SW가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는데 한국만 뒷짐을 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졸업생 10명 중 9명이 전공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간다. 학부 교수 30명 가운데 절반은 대학원생을 확보하지 못한다. 정부가 SW 정책을 20년 넘게 방치한 결과”라고 쓴소리를 했다.
세계는 지금 SW 혁명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노키아 같은 하드웨어 제조업체를 인수하고, 구글이 무인자동차와 옷처럼 입는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를 만든다. 스마트TV 스마트폰 같은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항공기 자동차 선박 로켓 등 첨단 기기의 핵심은 하드웨어를 ‘똑똑하게’ 만드는 SW다. 이제 ‘자동차는 가솔린이 아니라 SW로 달린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한국은 조선 산업이 세계 1위이지만 주요 SW의 90% 이상 수입하고, 자동차도 내장 SW의 99%를 외국산에 의존한다.
산업 현장에는 좋은 SW 인력이 없어 아우성인데도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것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기 때문이다. 50억 원짜리 프로그램을 발주하면 도급 재도급으로 개발업체의 손에 들어오는 것은 10분의 1밖에 안 된다. 외국 업체한테는 프로그램 구매 후에도 매년 20%의 유지 보수비를 주면서 한국 업체한테는 한 푼도 안 준다. 개인용 컴퓨터(PC)의 윈도는 돈 주고 사면서 한국 업체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불법 복제해 쓰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공공기관부터 SW를 제값 주고 사지 않으니 MS의 빌 게이츠는 부자가 되는데 한국엔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가 한 개도 없는 것이다.
미래부는 2017년까지 SW 인재 10만 명을 양성하고 초중고교에 100만 명의 SW 꿈나무를 만들 계획을 밝혔다.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SW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북돋워주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