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반쪽 법치, 온전한 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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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9월 16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속기록을 보자. 이 회의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자격심사안을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 11명의 자격심사안 및 징계안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사법심사의 대상을 윤리특위가 심사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불가능하고 국회법에도 어긋납니다.” “절차적 정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된다는 것이 제 소신이고 원칙입니다.” “윤리위가 아무리 중요해도 사법부의 판단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우리 국회의원부터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절차에 따라서 모든 일을 진행하자는 것입니다.”

“법치주의를 버린다면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석기 의원의 자격심사안과 함께 징계안까지 상정해 논의하자고 제의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면서 내세운 주장들이다. 자격심사안은 비례대표 부정경선, 징계안은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된 것이다. 민주당의 반대는 징계안이 9월 6일 윤리위에 회부된 뒤 아직 20일간의 숙려기간이 지나지 않았고 검찰의 기소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속내는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본 뒤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국회의 윤리심사는 사법재판과는 다른 일종의 정치재판이다. “국회는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며, 의원을 징계할 수 있다. 그 처분에 대하여는 법원에 제소할 수 없다”는 헌법 64조가 그것을 말해준다.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국회가 임의로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사법부의 판단을 앞세우는 것은 국회의 자율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치재판이라고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윤리심사도 나름 3심제를 두고 있다. 윤리위 소위 결정, 윤리위 전체회의 결정,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한다. 재판관 격인 여야 의원들의 의견이 맞지 않으면 ‘유무죄’나 ‘형량’을 정할 수 없다. 윤리심사 사유도 국회법, 국회의원윤리강령,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에 정해져 있다. 가장 흔히 적용되는 사유가 ‘품위유지 의무 손상’이다. 국회의원은 임기 초에 헌법 준수,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노력, 국가이익 우선 등을 선서한다. 국회의원이 지켜야 할 포괄적 품위유지 의무 가운데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을 것이다.

정치재판은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기에 이석기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와 징계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갖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절차적 정의, 이성, 합리성, 법치, 사법부의 판단을 내세우며 반대하거나 미적대고 있다. 좋다. 아무리 중차대하고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라 해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태도를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제대로 된 민주사회라면 박수라도 칠 일이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다른 사안에서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정치재판으로 다뤄서는 안 되는 사법재판의 대상이다. 국정원 직원이 댓글과 트위터로 정치성 글을 전파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것이 선거 개입에 해당하는지는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 검찰의 추가 수사나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언행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어떤가. 국정조사, 장외투쟁, 규탄집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마치 정치재판 하듯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할 건 안 하기 위해, 안 할 건 하기 위해 법을 들먹여선 안 된다. 정파나 이념을 떠나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지키는 것이 온전한 법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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