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었다. 학창 시절 좋아했던 박인환 시인(1926∼1956)의 ‘목마(木馬)와 숙녀(淑女)’가 떠오른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가을 속으로 떠났다….’
하지만 책과 담을 쌓고 사는 요즘 젊은 세대는 조락(凋落)의 가을과 문학이 주는 낭만을 잘 모른다. 마치 ‘목마와 숙녀’의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라는 구절처럼 문학의 낭만이 죽어가고 있다.
최근의 ‘인문학 열풍’도 일부 중장년층의 일일 뿐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는 점점 더 책을 멀리한다. 올 2월 어느 유명 일간지가 서울대를 비롯한 서울의 상위권 6개 대학의 최근 3년간 연간 도서대출량의 변화를 살펴봤다. 3년 사이에 무려 26.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화여대의 도서대출 건수는 3년 새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넉 달 전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30개국 3만 명을 대상으로 1주일에 책을 몇 시간이나 읽는지 조사한 자료를 발표했다. 우리나라가 3시간 6분으로 꼴찌였다. 부끄럽다. 독서 기피는 젊은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꼴찌에서 두 번째인 일본의 독서 시간도 우리보다 1시간이나 더 길었다. 1등을 차지한 인도는 10시간 42분으로 우리의 3배가 넘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국민과 대학생들의 독서 감소를 불러온 주범(主犯)으로 스마트폰을 꼽는다. 최근 우리나라가 스마트폰 보급률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걸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인구 100명당 67대의 스마트폰을 쓰는 것으로 나타나 2위를 차지한 노르웨이의 55대에 크게 앞섰다.
경희대 도정일 교수는 “스마트폰이 상용화되기 시작한 2008학년도 입학생부터 눈에 띄게 독서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대학생들은 책 대신 스마트폰으로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서 필요한 지식을 얻는다. 하지만 그 바다에는 괜찮은 정보도 많지만 그 못지않게 쓰레기 정보도 넘쳐난다.
학생들이 스마트폰 대신 다시 책을 찾도록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제학의 수요와 공급의 개념으로 그 답을 구해본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 보면 책과 스마트폰은 서로 대체재(代替財)이자 보완재(補完財) 관계다. 대체재 관계란 치킨과 피자처럼 한 재화의 가격이 오르면 다른 재화로 수요가 대체되는 걸 의미한다. 반면 치킨과 맥주와 같은 보완재 관계에서는 수요가 함께 늘거나 함께 줄어든다.
스마트폰은 책을 멀리하게 만드는 강력한 대체재다. 따라서 책을 가까이하도록 만들려면 대체재인 스마트폰이 없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대학교야 어렵겠지만 초중고교에서는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스마트폰 보관함에 스마트폰을 맡기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학생들이 수업시간에는 교재와 공부에 집중하고 쉬는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 놀 것이다.
스마트폰은 잘만 사용하면 책의 보완재가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줄 때 직접 책을 찾아봐야만 풀 수 있는 과제를 내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스마트폰이 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도서관을 찾을 것이다. 이때 가능하면 학생들이 쉽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책 위주로 문제를 내줘야 한다. 예를 들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불후의 명저(名著)이지만 학생들이 읽기에는 지루하고 어렵다. 따라서 다윈보다는 화석 증거와 함께 진화론을 재밌게 설명한 닐 슈빈의 ‘내 안의 물고기’와 같은 책을 먼저 보도록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
공급 측면에서는 출판사들이 스마트폰 환경에 부응해 온라인 내려받기가 가능한 전자책(e-book)과 오디오북(audiobook)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아이돌 가수나 스타들을 오디오북 성우로 출연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미국의 경우 종이책의 매출 감소 이상으로 전자책과 오디오북 판매가 증가하면서 출판시장 규모 자체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책이 적극적인 수요 공급 정책을 통해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회춘(回春)하길 바란다. 40여 년 전 가수 박인희의 낭송으로 들었던 ‘목마와 숙녀’를 가수 아이유의 오디오북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다시 듣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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