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새를 굽고 있다 한 놈은 너고 한 놈은 나다, 접시 위에 차례로 놓이는 날개를 씹으며, 꾼 옆에도 꾼이 판 없이 떠도는 마음에 또 한잔, 젖은 담배에 몇 번이나 성냥불을 댕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장 사이로 나간 길은 빗속에 흐늘흐늘 이리저리 풀리고, 풀린 꾼들은 빈 술병에도 얽히며 술집 밖으로 사라진다, 가뭇한 연기처럼, 사라져야 별 수 없이, 다만 다 같이 풀리는 기쁨, 멀리 뒷산에는 문득 나무들이 손 쳐들고 일어서서 단풍을 털고 있다
술 마시는 사람의 정서만이 아니라 술집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 시다. 우리나라 술꾼들은 그저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정을 나누면서 술을 마신다. 술집을 나서다 후배 일행이라도 만나면 흔히 술값을 내주거나 안주 하나라도 시켜 주고 간다. 아름다운 술꾼 풍토여라.
딱 요즘 같은 날씨, ‘곰장어’ 굽는 냄새와 포장 술집의 불빛이 퇴근길 직장인을 유혹한다. 그 유혹에 이끌려 한잔하는 게 우리나라 서민 가장의 큰 낙이리라. 음주율이 높고, 그만큼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많은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 이 시를 읽으며 ‘꼭 내 얘기 하는 것 같네!’ 하실 이 많으리. 화자는 마음이 여리고 감정이 풍부하고 친구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사람일 테다. 스트레스가 심해 삶이 흔들릴 때, 그 고비를 술 한잔 마셔 넘길 수 있다면 왜 그러지 않으랴. 얼른 풀어줘야지 그대로 거세게, 거듭 흔들리면 추가 떨어져나가 버린다.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러기 전에, ‘흔들릴 때마다 한잔!’ 술꾼들의 모토이자 생활의 지혜! 그런데 너무 자주 흔들리면 곤란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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